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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사람은 1) 서장 “이야앗!”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칼을 든 흑의 무사가 달려 들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칼과 무사가 하나가 되어 쏘아져 들어오는 듯 보였다. 칼 끝에 흐르는 냉엄한 살기와 무사의 어깨 위로 피어 오르는 분노가 잘 조화된 필살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공격을 받는 자는 ‘읏차’하고 모래를 한 삽 퍼 올리는 가벼운 기합과 함께 화극으로 달려오는 무사의 배를 쿡 찌르더니 무사가 달려오는 속도를 이용해 화극을 지렛대 삼아 번쩍 들어 올렸다. 무사는 꼬챙이에 꿰인 개구리마냥 들어올려지는가 싶더니 동료 무사에게로 내동댕이 쳐졌다. 창자와 선혈이 터져 나왔지만 화극을 쓰는 자는 옷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남문 밖 빈촌의 동쪽을 맡고 있는 가진울이었다. 이에 뒤질세라 창을 쓰는 자는 두 명의 흑의 무사를 한 창으로 꿰었다. 창은 날카롭게 벼린 일자 창이지만 번개처럼 찌르고 빠지는 수법이 독사의 혓바닥을 닮아서 사설이라 불렀다. 남문 밖의 서쪽을 맡고 있는 타무 였다. “거지 새끼들아! 한 명씩만 죽이란 말이다.” 이렇게 외치는 자는 남문 밖 중앙을 맡고 있는 마루였다. 쌍 도끼를 잘 쓰는 그는 양 손에 들고 있는 도끼로 두 명을 연달아 찍었다. “이렇게 한방에 한 놈씩 말이다.” 그 세 명의 뒤로 무리들의 함성이 솟아 올랐다. 흑의 무사들은 자신들이 범의 소굴에 들어 온 것이라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무공을 아는 자가 더러 있다고는 해도 한낱 거지 무리들이라고 생각했던 게 첫 번째 실수였다. 애초에 출발한 흑의 무사 200명 중 벌써 100여명이 죽거나 다쳐 쓰러져있었다. 반면 자신들이 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어 넘긴 수는 고작 50여명 남짓이었다. 분명히 베기는 더 베었지만 놈들은 이상하게 쓰러지지 않았다. 팔다리가 잘린 놈들조차도 선지피를 콸콸 쏟아내면서도 싸우겠다고 서있는 모습은 징그럽기까지 했다. 두 번째 실수라면 400명 가량이나 모여있는 그들을 치겠다고 200명의 호화무사와 40명의 기녀들만 온 것이 실수였다. 그들을 치기는커녕 이제는 둘러 쌓인 상태로 목숨이나 부지할 지 모를 지경이었다. 양아치들의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 저잣거리의 온갖 잡배들을 상대하며 기루를 경비하는 호화무사들도 차마 입으로 옮겨 담기 힘든 욕설이었고 지체 높은 귀족이나 점잖은 상인들만 상대하던 기녀들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골적인 욕설이었다. ‘야이 씹이나 파는 씹팔 년들아!’로 시작해서 씹이나 잘 팔아서 씹집이나 크게 지을 일이지 이런 거지 구덩이엔 무슨 씹을 팔러 왔냐는 둥, 꽁꽁 묶어놓고 거기 주름이 쫙 펴지도록 씹질을 해주겠다는 둥 도무지 듣고 있을 수가 없는 욕설이었다. 무사대를 이끌고 있는 월영은 분해서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저런 거렁뱅이들을 상대로 ‘천녀천라천무’를 펼쳐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입술에 피가 나도록 꼭 깨물었다. 그녀를 곁에서 호위하던 무사는 그 모습을 보고 그녀가 ‘천녀천라천무’를 펼칠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거렁뱅이들을 상대로? 무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기녀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모시는 꽃과 같은 아가씨들이 이런 거렁뱅이들 앞에서 춤을 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야압~!’ 날카로운 기합을 내뿜으며 가장 심하게 욕설을 지껄이고 있는 마루를 향해 섬전처럼 몸을 쏘아 달려들었다. 목숨을 주고 받는 전장이라도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것이 분명하고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행동이란 게 있을 진데 저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한단 말인가. ‘내 목숨을 내놓더라도 저놈의 목만은 반드시…’ 목숨을 건 그의 공격은 몹시 신랄했으나 배와 가슴에 마루의 도끼 날 두 개만 박으며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월영은 망설이고 있을 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지체하다가는 아예 천녀천라천무를 펼칠 기회가 사라질 것이었다. “천녀천라천무를 펼쳐라” 그녀의 외침과 함께 어디선가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땅’하고 비파 뜯는 소리가 뒤따랐다. 이상하도록 심금을 울리는 소리였다. 흑의 무사들이 옷을 찢어 귀와 코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다시금 비파 소리가 들렸다. 묘하게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소리였다. 가진울과 마루, 타무는 뭔가 일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양아치 온달 연재 합니다.
끝을 낼 수 있을지.. 양아치 온달 잡고 씨름한지 벌써 10년 넘네요. 내가 지금 잡고 씨름하고 있는 것들은 다들 1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는 것은 무얼 의미 하는 걸까.. 아.. 이 게으름.. ㅠㅠ 내용은 사실성이 살짝 있다기 보다는 거의 없으며 사실성이 있다해도 그건 의도했다기 보다는 순전히 우연적으로 빚어진 상상의 산물 입니다. 필자는 고구려시대의 생활사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각 시대의 생활사를 짜깁기 하여 넣었습니다. 한마디로 허접한 글이지만 와서 보시고 내려주시는 각종 철퇴는 환영해 마지 않습니다.
옛 글들을 뒤적여 새 글 쓰기에 올려 놓는데..
정말 쉽지가 않아.. 츱..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1) “언이!” 멀리서 사타(간날나무칼)를 휘두르고 있는 언이의 모습이 보이자 아이가 소리쳤다. 황혼에 오는 늑대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마의 아이들 중 황혼에 오는 늑대와 유일한 한씨인 산애늦이 뭐루달천둥이었다. 황혼에 오는 늑대는 휘두르던 사타를 연둣빛 풀들이 뒤덮인 보드라운 땅에 꽂아 놓고 그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언이가 기다리자 아이는 더욱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씨질하는 달의 초원의 땅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촉촉하고 새로 자라난 싱그러운 풀들은 부드러웠지만 수없이 넘어지며 뛰어온 뭐루달천둥은 여러 군데에 긁힌 상처를 입고 있었고 얼굴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었다. “언이! 나는 마마가 될 수 없대” 숨이 넘어가도록 구릉을 뛰어 올라온 아이는 황혼에 오는 늑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소리 질렀다. 여름 거처인 마을에서부터 이곳까지는 꽤 먼 거리.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내쳐 달리도록 할 만큼 아이의 실망감과 분노는 큰 것이었다. “나는 왜 엄언이처럼 마마가 될 수 없는 거야? 나는 왜 산애로 태어난 거지?” 말이란 강을 건네주는 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낱말이라는 배 위에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었고 상대방의 가슴에 정확하게 전달 할 수 있었다. 짧은 말 한 두 마디 듣는 것으로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단어들의 나열로도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오해의 소지가 없었다. 황혼에 오는 늑대도 어린 한배의 짤막한 말만 듣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즉시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목에는 몇 개의 결이 매듭지어진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수는 신성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거나 헤아려서는 안 된다. 특히 산애들이 수를 세어 말하는 건 금지 되어 있었다. 특별히 금지되어 있지 않아도 대부분의 산애는 개념도 잘 알지못하는 숫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은 오직 한 분 뿐이며(하나), 집애와 산애가 나왔고(둘), 삼신이 이를 보살피시고(셋), 하늘과 땅과 앞과 뒤에서(넷),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로(다섯), 여기서(여섯), 저기서(일곱), 아직은 모르는 곳에서도(여덟), 우리가 번성하여(아홉), 가득차게(열), 그리고 여기 끝내는 말인 - ‘(살게) 하시도다’가 붙었다. 황혼에 오는 늑대는 자장가를 부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결을 소리내어 세었다. ‘당은 오직 한 분 뿐이며, 집애와 산애가 나왔고, 삼신이 이를 보살피시고, 하늘과 땅과 앞과 뒤에서,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로, 여기서, 저기서, 살게 하시도다.’ 이렇게 모두 일곱 결의 매듭이 묶여 있었다. 결이란 매듭을 지어서 한 표시를 일컫기도 하고 매듭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아이의 목에 있는 일곱 결의 매듭이 있는 것은 아이가 일곱 번째 해를 살고 있는 일곱해살이 라는 걸 뜻했다. ‘술 담그는 달’에 뜨는 보름달은 소원을 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은 모두 소원 한 가지씩을 빌었다. 대부분 갈걷이가 잘 되게 해달라거나 누구와 정분이 생기게 해달라는 평이한 소원을 빌었지만 일곱해살이가 되는 아이들은 자라서 무엇무엇이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게 되어있었다. 태어난 이후에 처음 맞는 중요한 의식으로 일종의 출생신고식 이었다. 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후에도 완전하게 태어난 게 아니다. 그들은 저쪽 세상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으며 어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시험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은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시험을 통과하면 비로소 이 세상에 두 발을 다 디딘 것이 되는데 그게 바로 태어나서 일곱 번째 되는 해의 ‘더위가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의 보름달 밤이었다. 그때 아이들은 모든 시험을 통과하게 도와준 위대한 당령에게 감사를 드림과 동시에 장차 자라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고하며 앞으로도 도움을 그만두지 말아달라는 기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이 끝나면 아직 남아있는 저 세상의 일들을 말끔히 잊는다. 또한 소원에 따라 아이들이 평생 속해서 배우고 의지하며 생활하는 소공동체인 방이 정해진다. 그 의식을 앞에 두고 아이의 엄언이들은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묻곤 하는데 산으로 달리는 천둥은 마마가 되고 싶었나보다. 부족의 마마인 엄언이는 단호하게 너는 될 수 없다고 딱 잘라 얘기했겠지. “언이! 나는 왜 마마가 될 수 없는거야? 나는 왜 엄언이처럼 많은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거지?” 산으로달리는 천둥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울며 고함쳤다. 아직 산애의 할 일과 집애의 할 일의 구분도 명확하지 못하는 아이의 순도 높은 슬픔은 황혼에오는늑대의 가슴을 깊이 후벼 놓았다. 그는 울부짖는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엄언이가 같으면 한배라고 이야기 했고 성이 같았다. 앞언이가 같으면 한씨라고 이야기했고 씨가 같았는데 17명의 한배중 씨가 같은 건 그들 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둘은 다른 한배들보다 가까웠다. 언이의 품에 안긴 산으로 달리는 천둥은 더욱 요란하게 몸부림치며 울었다. 어린 늦이에게 뭐라고 얘길 해야 할까? 황혼에 오는 늑대는 끌어안은 늦이의 등을 토닥 토닥이며 시선을 멀리 풀어놓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아직 자잘한 어린 풀들이 자지러지는 풀파도를 쳤다. 겨울 주거지인 엄에서 여름 주거지인 집으로 옮긴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지만 ‘씨질하는 달’의 햇볕은 따듯하기만 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마음은 얼마나 엄숙하고 고독한가. 일곱해살이 밖에 되지 않은 뭐루달천둥은 그 거대한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3) 산애가 마마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까? 그것은 뭐라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원래부터 그렇고 당연한 일이었다. 집애는 태양의 지배를 받고 산애는 달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집애는 해가 떴다가 지는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소유하며 다스리는 게 마땅한 것이다. 그건 누구나가 알고있는 원칙이지만 뭐루달천둥이 그런 원칙을 이해하고 있다면 마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아이에게 안된다는 말 할 때는 아이가 알아듣게 말해야하며 진지해야 한다고 황혼에오는 늑대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족장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 한 아름의 집애들 중에서도 족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 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족장이 될 수 있는 좋은 씨를 받아서 족장을 낼 수 있는 좋은 배에서 태어나야 한다. 운이 좋아 그 자격 요건에 충족 되었다고 하면 족장이 되는 시합에 참여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시합은 세가지 종목으로 하는데 첫 번째는 몸의 힘이다. 힘이란 경쟁자와 무력을 겨루는 것으로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자기 소유의 자식들을 내보낸다. 이때 산애들은 자식을 소유하지 않으므로 대신 싸워 줄 상대가 없다. 두 번째는 마니의 힘이다. 집애들은 산애들은 가질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위대한 당령에게 물려받은 세상을 다스리는 힘으로서 오직 당족에게만 있다. 집애들은 누구나 그럼 힘을 조금씩 갖고 있지만 특별히 눙력이 뛰어난 집애를 마니라고 불렀다. 마니들은 그 힘을 사용해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불러오고 적들의 머리 위에 불벼락이 떨어지게 할 수도 있고 짐승들을 다스려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게 하며 옛날 옛적 일이나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훤히 할 수 있다. 그런 마니로서의 힘이 강한 자가 족장이 되어야만 부족이 잘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애에겐 그런 마니의 힘이 없고 아주 간혹 있어도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셋째는 가장 어려운 성찰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합에서 이겼다고 해도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사람은 족장이 될 수 없다. 족장이 될 사람은 한 달 열흘 동안 동굴에서 기거하며 자기내면을 더욱 깨끗하게 하고 당에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엄언이인 가마우지는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혼마니였고 족장이 되기 위해 기억마니, 날씨마니와 겨루었다. 그때 열네해살이이던 황혼에 오는 늑대는 싸움을 겨루는 데 출전했었고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쳐 부족 내 최고의 싸울애비란 불림을 받았다. 산애는 족장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족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4) 마니 대신에 씨알애비가 되라고 충고해 줄까? 산애가 족장과 가장 근접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건 훌륭한 씨알애비가 돼서 족장의 가시버시가 되는 길이다. 좋은 씨에서 나온 아이들은 모두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었고 집애들은 항상 좋은 씨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일단 좋은 씨를 가진 사람은 가시버시로 선택을 받을 수가 있었다. 좋은 씨알애비는 엄언이가 족장이 되게 도와 주지는 못하지만 씨를 파는 댓가로 많은 재물을 엄언이에게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족장이 될 만한 집애에게 씨좋은 아이들을 낳게하여 마마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황혼에 오는 늑대나 산으로 달리는 천둥도 모두 희뭐루의 씨를 갖고 있었고 가마우지의 당성에서 잉태되었으므로 씨알애비가 되기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씨알애비는 모든 것에 능통해야 하고 기품과 성품도 훌륭해야 한다. 최고의 싸울애비인 황혼에 오는 늑대도 씨알애비는 아니었다. 이는 산애가 될 수 있는 것중 가장 훌륭한 것이며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데 뭐루달천둥 희뭐루가 씨알애비가 되고자 한다면 이미 절반쯤은 희망을 이룬 셈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선택된 사람들만이 바랄수 있는 꿈이다. 다행히 황혼에오는 늑대와 산으로 달리는 천둥은 희뭐루의 씨를 가진 자들이었고 그들의 앞언이가 좋은 씨를 보유한 자였기 때문에 꿈꿀 수 있는 일이었다. 웬만한 씨들은 최고의 씨알애비가 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한다. 최고의 산애만이 집애를 위한 최고의 씨알애비가 될 수 있었고 당데 뭐루달천둥 은 누구보다 근접하고 좋은 위치에서 출발 할 수 있다. 늦이에게 해 줄 말을 생각하던 황혼에오는늑대는 서글퍼졌다. 산애는 왜 산애로서 무엇인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싸울애비면 왜 싸울애비로 끝나지 않고 집애를 위한 싸울애비여야 하는 걸까? 산애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불구나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뭐루달천둥을 울게 만든 것이다. 산애로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로서 태어난지 일곱 해 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반쯤은 저승에 발을 걸치고 있는 어린 아이가 오열 하면서 세상에 나온 것을 원망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이 언이처럼 용감한 싸울애비가 되거나 우리의 앞언이처럼 훌륭한 씨알애비가 되도록 노력해라. 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어린 한배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가질 수 있는 거라곤 간날돌칼이나 간날나무칼 정도 밖에 없는 산애가 어떻게 마마가 된단 말인가. 마마는 고사하고 마니의 위치에 까지 오른 산애도 없었다. 산으로달리는 천둥은 정확하게 무얼 하고 싶은 것일가? 그냥 막연히 족장이 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싶은 걸까. 알수는 없어도 불가능한 것을 간절히 바라는 자의 슬픔을 황혼에 오는 늑대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남자가 마니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불가능이 황혼의 오는 늑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동시에 그의 고집과 불만에 불을 당겨놓았다. 그래서 황혼에 오는 늑대는 울부짖는 산애늦이며 한배한씨인 당데 뭐루달천둥 희뭐루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만 않으면 절대로 진 게 아니야. 이번 세상이 아니면 다음 세상에서라도 또 그 다음 세상에서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절대로 지는 게 아니야. 포기하는 순간에 지는 거야.”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 おもひでぽろぽろ -추억은 방울방울 - Only Yesterday
스튜디오 지브리 1991년작 高畑勳감독 제 14회 야마미치 후미코영 화상, 제 9회 머니 메이킹 감독상, 제 9회 골든 그로스상...
오즈 야스지로의 분위기가 분명히 느껴지는 작품. 양아치 평점 별 세 개 - 양아치의 과격한 모습이 결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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