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양아치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걸까?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사람은
쌈마이여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가벼운 느낌의 양아치라는 표현이 좋다.

by 인디고울프 | 2007/04/30 03:26 | 트랙백 | 덧글(1)
에피소드01 – 미녀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 #01

1) 서장

이야앗!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칼을 든 흑의 무사가 달려 들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칼과 무사가 하나가 되어 쏘아져 들어오는 듯 보였다. 칼 끝에 흐르는 냉엄한 살기와 무사의 어깨 위로 피어 오르는 분노가 잘 조화된 필살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공격을 받는 자는 읏차하고 모래를 한 삽 퍼 올리는 가벼운 기합과 함께 화극으로 달려오는 무사의 배를 쿡 찌르더니 무사가 달려오는 속도를 이용해 화극을 지렛대 삼아 번쩍 들어 올렸다.

 

무사는 꼬챙이에 꿰인 개구리마냥 들어올려지는가 싶더니 동료 무사에게로 내동댕이 쳐졌다.

창자와 선혈이 터져 나왔지만 화극을 쓰는 자는 옷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 남문 밖 빈촌의 동쪽을 맡고 있는 가진울이었다.

 

이에 뒤질세라 창을 쓰는 자는 두 명의 흑의 무사를 한 창으로 꿰었다.

창은 날카롭게 벼린 일자 창이지만 번개처럼 찌르고 빠지는 수법이 독사의 혓바닥을 닮아서 사설이라 불렀다. 남문 밖의 서쪽을 맡고 있는 타무 였다.

 

거지 새끼들아! 한 명씩만 죽이란 말이다.

이렇게 외치는 자는 남문 밖 중앙을 맡고 있는 마루였다. 쌍 도끼를 잘 쓰는 그는 양 손에 들고 있는 도끼로 두 명을 연달아 찍었다.

이렇게 한방에 한 놈씩 말이다.

 

그 세 명의 뒤로 무리들의 함성이 솟아 올랐다.

흑의 무사들은 자신들이 범의 소굴에 들어 온 것이라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무공을 아는 자가 더러 있다고는 해도 한낱 거지 무리들이라고 생각했던 게 첫 번째 실수였다. 애초에 출발한 흑의 무사 200명 중 벌써 100여명이 죽거나 다쳐 쓰러져있었다. 반면 자신들이 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어 넘긴 수는 고작 50여명 남짓이었다. 분명히 베기는 더 베었지만 놈들은 이상하게 쓰러지지 않았다. 팔다리가 잘린 놈들조차도 선지피를 콸콸 쏟아내면서도 싸우겠다고 서있는 모습은 징그럽기까지 했다.

 

두 번째 실수라면 400명 가량이나 모여있는 그들을 치겠다고 200명의 호화무사와 40명의 기녀들만 온 것이 실수였다. 그들을 치기는커녕 이제는 둘러 쌓인 상태로 목숨이나 부지할 지 모를 지경이었다.

 

양아치들의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 저잣거리의 온갖 잡배들을 상대하며 기루를 경비하는 호화무사들도 차마 입으로 옮겨 담기 힘든 욕설이었고 지체 높은 귀족이나 점잖은 상인들만 상대하던 기녀들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골적인 욕설이었다.

 

야이 씹이나 파는 씹팔 년들아!로 시작해서 씹이나 잘 팔아서 씹집이나 크게 지을 일이지 이런 거지 구덩이엔 무슨 씹을 팔러 왔냐는 둥, 꽁꽁 묶어놓고 거기 주름이 쫙 펴지도록 씹질을 해주겠다는 둥 도무지 듣고 있을 수가 없는 욕설이었다.

 

무사대를 이끌고 있는 월영은 분해서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저런 거렁뱅이들을 상대로 천녀천라천무를 펼쳐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입술에 피가 나도록 꼭 깨물었다. 그녀를 곁에서 호위하던 무사는 그 모습을 보고 그녀가 천녀천라천무를 펼칠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거렁뱅이들을 상대로?

무사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기녀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모시는 꽃과 같은 아가씨들이 이런 거렁뱅이들 앞에서 춤을 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야압~!

날카로운 기합을 내뿜으며 가장 심하게 욕설을 지껄이고 있는 마루를 향해 섬전처럼 몸을 쏘아 달려들었다. 목숨을 주고 받는 전장이라도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것이 분명하고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행동이란 게 있을 진데 저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한단 말인가.

 

내 목숨을 내놓더라도 저놈의 목만은 반드시…’

목숨을 건 그의 공격은 몹시 신랄했으나 배와 가슴에 마루의 도끼 날 두 개만 박으며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월영은 망설이고 있을 새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지체하다가는 아예 천녀천라천무를 펼칠 기회가 사라질 것이었다.

 

천녀천라천무를 펼쳐라

그녀의 외침과 함께 어디선가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하고 비파 뜯는 소리가 뒤따랐다. 이상하도록 심금을 울리는 소리였다.

 

흑의 무사들이 옷을 찢어 귀와 코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다시금 비파 소리가 들렸다.

묘하게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소리였다.

가진울과 마루, 타무는 뭔가 일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by 인디고울프 | 2007/04/30 02:48 | 양아치온달 | 트랙백 | 덧글(1)
양아치온달 연재 합니다.
양아치 온달 연재 합니다.

끝을 낼 수 있을지..

양아치 온달 잡고 씨름한지 벌써 10년 넘네요.

내가 지금 잡고 씨름하고 있는 것들은 다들 1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는 것은
무얼 의미 하는 걸까..

아.. 이 게으름.. ㅠㅠ

내용은 사실성이 살짝 있다기 보다는 거의 없으며
사실성이 있다해도 그건 의도했다기 보다는 순전히 우연적으로 빚어진 상상의 산물 입니다.
 
필자는 고구려시대의 생활사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각 시대의 생활사를 짜깁기 하여 넣었습니다.

한마디로 허접한 글이지만 와서 보시고 내려주시는 각종 철퇴는 환영해 마지 않습니다.
by 인디고울프 | 2007/04/30 02:44 | 양아치온달 | 트랙백 | 덧글(0)
아아 쉽지가 않아..
옛 글들을 뒤적여 새 글 쓰기에 올려 놓는데..

정말 쉽지가 않아..

츱..
by 인디고울프 | 2007/03/16 00:10 | 걍 낙서장 | 트랙백 | 덧글(0)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 #01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가마우지)

1)


“언이!”

멀리서 사타(간날나무칼)를 휘두르고 있는 언이의 모습이 보이자 아이가 소리쳤다. 황혼에 오는 늑대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마의 아이들 중 황혼에 오는 늑대와 유일한 한씨인 산애늦이 뭐루달천둥이었다. 황혼에 오는 늑대는 휘두르던 사타를 연둣빛 풀들이 뒤덮인 보드라운 땅에 꽂아 놓고 그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언이가 기다리자 아이는 더욱 속도를 내서 달리기 시작했다. 씨질하는 달의 초원의 땅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촉촉하고 새로 자라난 싱그러운 풀들은 부드러웠지만 수없이 넘어지며 뛰어온 뭐루달천둥은 여러 군데에 긁힌 상처를 입고 있었고 얼굴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었다.


“언이! 나는 마마가 될 수 없대”

숨이 넘어가도록 구릉을 뛰어 올라온 아이는 황혼에 오는 늑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소리 질렀다.


여름 거처인 마을에서부터 이곳까지는 꽤 먼 거리.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내쳐 달리도록 할 만큼 아이의 실망감과 분노는 큰 것이었다.

“나는 왜 엄언이처럼 마마가 될 수 없는 거야? 나는 왜 산애로 태어난 거지?”


말이란 강을 건네주는 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낱말이라는 배 위에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었고 상대방의 가슴에 정확하게 전달 할 수 있었다. 짧은 말 한 두 마디 듣는 것으로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단어들의 나열로도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오해의 소지가 없었다.


황혼에 오는 늑대도 어린 한배의 짤막한 말만 듣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즉시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목에는 몇 개의 결이 매듭지어진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수는 신성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거나 헤아려서는 안 된다. 특히 산애들이 수를 세어 말하는 건 금지 되어 있었다.


특별히 금지되어 있지 않아도 대부분의 산애는 개념도 잘 알지못하는 숫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은 오직 한 분 뿐이며(하나), 집애와 산애가 나왔고(둘), 삼신이 이를 보살피시고(셋), 하늘과 땅과 앞과 뒤에서(넷),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로(다섯), 여기서(여섯), 저기서(일곱), 아직은 모르는 곳에서도(여덟), 우리가 번성하여(아홉), 가득차게(열), 그리고 여기 끝내는 말인 - ‘(살게) 하시도다’가 붙었다.


황혼에 오는 늑대는 자장가를 부르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결을 소리내어 세었다.


‘당은 오직 한 분 뿐이며, 집애와 산애가 나왔고, 삼신이 이를 보살피시고, 하늘과 땅과 앞과 뒤에서,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로, 여기서, 저기서, 살게 하시도다.’ 이렇게 모두 일곱 결의 매듭이 묶여 있었다. 결이란 매듭을 지어서 한 표시를 일컫기도 하고 매듭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아이의 목에 있는 일곱 결의 매듭이 있는 것은 아이가 일곱 번째 해를 살고 있는 일곱해살이 라는 걸 뜻했다.


‘술 담그는 달’에 뜨는 보름달은 소원을 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은 모두 소원 한 가지씩을 빌었다. 대부분 갈걷이가 잘 되게 해달라거나 누구와 정분이 생기게 해달라는 평이한 소원을 빌었지만 일곱해살이가 되는 아이들은 자라서 무엇무엇이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게 되어있었다. 태어난 이후에 처음 맞는 중요한 의식으로 일종의 출생신고식 이었다.


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후에도 완전하게 태어난 게 아니다. 그들은 저쪽 세상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으며 어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시험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은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시험을 통과하면 비로소 이 세상에 두 발을 다 디딘 것이 되는데 그게 바로 태어나서 일곱 번째 되는 해의 ‘더위가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의 보름달 밤이었다.


그때 아이들은 모든 시험을 통과하게 도와준 위대한 당령에게 감사를 드림과 동시에 장차 자라서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고하며 앞으로도 도움을 그만두지 말아달라는 기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이 끝나면 아직 남아있는 저 세상의 일들을 말끔히 잊는다. 또한 소원에 따라 아이들이 평생 속해서 배우고 의지하며 생활하는 소공동체인 방이 정해진다.


그 의식을 앞에 두고 아이의 엄언이들은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묻곤 하는데 산으로 달리는 천둥은 마마가 되고 싶었나보다. 부족의 마마인 엄언이는 단호하게 너는 될 수 없다고 딱 잘라 얘기했겠지.


“언이! 나는 왜 마마가 될 수 없는거야? 나는 왜 엄언이처럼 많은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거지?”

산으로달리는 천둥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울며 고함쳤다. 아직 산애의 할 일과 집애의 할 일의 구분도 명확하지 못하는 아이의 순도 높은 슬픔은 황혼에오는늑대의 가슴을 깊이 후벼 놓았다.


그는 울부짖는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엄언이가 같으면 한배라고 이야기 했고 성이 같았다. 앞언이가 같으면 한씨라고 이야기했고 씨가 같았는데 17명의 한배중 씨가 같은 건 그들 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둘은 다른 한배들보다 가까웠다. 언이의 품에 안긴 산으로 달리는 천둥은 더욱 요란하게 몸부림치며 울었다.


어린 늦이에게 뭐라고 얘길 해야 할까?

황혼에 오는 늑대는 끌어안은 늦이의 등을 토닥 토닥이며 시선을 멀리 풀어놓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아직 자잘한 어린 풀들이 자지러지는 풀파도를 쳤다. 겨울 주거지인 엄에서 여름 주거지인 집으로 옮긴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지만 ‘씨질하는 달’의 햇볕은 따듯하기만 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마음은 얼마나 엄숙하고 고독한가. 일곱해살이 밖에 되지 않은 뭐루달천둥은 그 거대한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3)

산애가 마마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까?


그것은 뭐라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원래부터 그렇고 당연한 일이었다. 집애는 태양의 지배를 받고 산애는 달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집애는 해가 떴다가 지는 동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소유하며 다스리는 게 마땅한 것이다.


그건 누구나가 알고있는 원칙이지만 뭐루달천둥이 그런 원칙을 이해하고 있다면 마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아이에게 안된다는 말 할 때는 아이가 알아듣게 말해야하며 진지해야 한다고 황혼에오는 늑대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족장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다. 한 아름의 집애들 중에서도 족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 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족장이 될 수 있는 좋은 씨를 받아서 족장을 낼 수 있는 좋은 배에서 태어나야 한다.


운이 좋아 그 자격 요건에 충족 되었다고 하면 족장이 되는 시합에 참여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시합은 세가지 종목으로 하는데 첫 번째는 몸의 힘이다. 힘이란 경쟁자와 무력을 겨루는 것으로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자기 소유의 자식들을 내보낸다. 이때 산애들은 자식을 소유하지 않으므로 대신 싸워 줄 상대가 없다.


두 번째는 마니의 힘이다.

집애들은 산애들은 가질 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위대한 당령에게 물려받은 세상을 다스리는 힘으로서 오직 당족에게만 있다. 집애들은 누구나 그럼 힘을 조금씩 갖고 있지만 특별히 눙력이 뛰어난 집애를 마니라고 불렀다.


마니들은 그 힘을 사용해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불러오고 적들의 머리 위에 불벼락이 떨어지게 할 수도 있고 짐승들을 다스려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게 하며 옛날 옛적 일이나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훤히 할 수 있다. 그런 마니로서의 힘이 강한 자가 족장이 되어야만 부족이 잘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애에겐 그런 마니의 힘이 없고 아주 간혹 있어도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셋째는 가장 어려운 성찰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합에서 이겼다고 해도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사람은 족장이 될 수 없다. 족장이 될 사람은 한 달 열흘 동안 동굴에서 기거하며 자기내면을 더욱 깨끗하게 하고 당에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엄언이인 가마우지는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혼마니였고 족장이 되기 위해 기억마니, 날씨마니와 겨루었다. 그때 열네해살이이던 황혼에 오는 늑대는 싸움을 겨루는 데 출전했었고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쳐 부족 내 최고의 싸울애비란 불림을 받았다. 산애는 족장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족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4) 마니 대신에 씨알애비가 되라고 충고해 줄까?

산애가 족장과 가장 근접한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건 훌륭한 씨알애비가 돼서 족장의 가시버시가 되는 길이다. 좋은 씨에서 나온 아이들은 모두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었고 집애들은 항상 좋은 씨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일단 좋은 씨를 가진 사람은 가시버시로 선택을 받을 수가 있었다.


좋은 씨알애비는 엄언이가 족장이 되게 도와 주지는 못하지만 씨를 파는 댓가로 많은 재물을 엄언이에게 가져다 줄 수도 있고 족장이 될 만한 집애에게 씨좋은 아이들을 낳게하여 마마를 만들어 줄 수 있다.


황혼에 오는 늑대나 산으로 달리는 천둥도 모두 희뭐루의 씨를 갖고 있었고 가마우지의 당성에서 잉태되었으므로 씨알애비가 되기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씨알애비는 모든 것에 능통해야 하고 기품과 성품도 훌륭해야 한다. 최고의 싸울애비인 황혼에 오는 늑대도 씨알애비는 아니었다. 이는 산애가 될 수 있는 것중 가장 훌륭한 것이며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당데 뭐루달천둥 희뭐루가 씨알애비가 되고자 한다면 이미 절반쯤은 희망을 이룬 셈이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선택된 사람들만이 바랄수 있는 꿈이다.

다행히 황혼에오는 늑대와 산으로 달리는 천둥은 희뭐루의 씨를 가진 자들이었고 그들의 앞언이가 좋은 씨를 보유한 자였기 때문에 꿈꿀 수 있는 일이었다. 웬만한 씨들은 최고의 씨알애비가 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한다.


최고의 산애만이 집애를 위한 최고의 씨알애비가 될 수 있었고 당데 뭐루달천둥 은 누구보다 근접하고 좋은 위치에서 출발 할 수 있다.


늦이에게 해 줄 말을 생각하던 황혼에오는늑대는 서글퍼졌다.


산애는 왜 산애로서 무엇인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싸울애비면 왜 싸울애비로 끝나지 않고 집애를 위한 싸울애비여야 하는 걸까?


산애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불구나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뭐루달천둥을 울게 만든 것이다. 산애로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로서  태어난지 일곱 해 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반쯤은 저승에 발을 걸치고 있는 어린 아이가 오열 하면서 세상에 나온 것을 원망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이 언이처럼 용감한 싸울애비가 되거나 우리의 앞언이처럼 훌륭한 씨알애비가 되도록 노력해라.

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어린 한배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가질 수 있는 거라곤 간날돌칼이나 간날나무칼 정도 밖에 없는 산애가 어떻게 마마가 된단 말인가. 마마는 고사하고 마니의 위치에 까지 오른 산애도 없었다.


산으로달리는 천둥은 정확하게 무얼 하고 싶은 것일가?

그냥 막연히 족장이 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싶은 걸까. 알수는 없어도 불가능한 것을 간절히 바라는 자의 슬픔을 황혼에 오는 늑대는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남자가 마니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불가능이 황혼의 오는 늑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동시에 그의 고집과 불만에 불을 당겨놓았다.

그래서 황혼에 오는 늑대는 울부짖는 산애늦이며 한배한씨인 당데 뭐루달천둥 희뭐루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만 않으면 절대로 진 게 아니야. 이번 세상이 아니면 다음 세상에서라도 또 그 다음 세상에서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절대로 지는 게 아니야. 포기하는 순간에 지는 거야.”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by 인디고울프 | 2007/03/16 00:05 | 황혼에 오는 늑대 | 트랙백 | 덧글(0)
추억은 방울방울




おもひでぽろぽろ -추억은 방울방울 - Only Yesterday

 

스튜디오 지브리 1991년작

高畑勳감독

제 14회 야마미치 후미코영 화상,

제 9회 머니 메이킹 감독상,

제 9회 골든 그로스상...

     오즈 야스지로의 분위기가 분명히 느껴지는 작품.

    양아치 평점 별 세 개 - 양아치의 과격한 모습이 결여되었다

     

     

    1)

    국민학교 4학년 때 나는 작은 아이였다.
    가끔 그 시절의 사진을 꺼내 보면 동그란 얼굴과 동그란 눈을 가진 똘똘한 시절의 내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누구나 그 시절엔 그랬겠지만 난 공부 잘 하고 달리기도 빨랐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그 당시 친구들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때에도 반에서 꼴등하는 애들이 있었고 한글을 못깨우친 애들, 구구단을 못 외는 애들이 있었다. 그런 애들은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 남아서 선생과 지옥훈련을 해야했다.
    그때 나와 친한 친구로는 동석이와 종민이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등하교를 같이 했다. 동석이는 반에서 싸움을 제일 잘 했고 달리기도 제일 빠른 아이였다. 나는 작은 아이들 중에서 싸움을 제일 잘 했고 달리기도 제일 잘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동석이와 동급이라고 생각했다. 종민이는 키는 컸지만 달리기는 나와 비슷했는데 구구단을 못 외워서 특별훈련 받는 날이 많았고 동석이와 나는 철봉대에 매달려 종민이를 기다리곤 했다.
    종민이가 유별나게 구구단을 못외는 날이 가끔 있었다.
    웬일인지 그동안 더듬거리면서 그나마 외던 3단도 마구 헷갈리고 술술 잘 외던 2단도 더듬거리는 그런 날이면 선생님이 짜장면을 시켜서 메기면서 종민이를 저녁 늦도록 가르쳤는데 나와 동석이는 20원짜리 노가리를 사먹거나 20원도 없는 날은 쫄쫄 굶기마련이었다. 도시락을 두개씩 싸와야 겠다고 투덜거리면서..
    도시락..
    요즘 도시락을 못 싸오는 국민학생이 많다는 뉴스를 보곤 하는데 그때도 그랬는 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다만 몇몇 애들이 도시락 뚜껑을 빌려가지고 다니면서 친구들 도시락을 한 두 숟가락씩 얻어 먹었는데 십시일반이라고 쳐서 밥 6그릇 정도를 먹었다면 과장이겠지만 두어 그릇 정도는 꼬박 챙겨 먹었던것 같다.
    그리고 우유급식.
    도시락을 안싸오는 애들은 우유급식도 신청하지 않았다. 도시락 반찬으로 줄기차게 단무지와 김치만 싸오는 아이들도 우유급식을 신청하지 않았다. 840원인가 하던 육성회비도 못내서 망신을 당하는 애들이었는데 우유는 당치도 않은 사치품 이었던 것이다.
    우유는 둘째 시간이 끝난 다음에 몇몇 아이들이 대표로 타러 갔다.
    거의가 급식 신청을 안한 아이들이었다. 키 큰 부류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급식을 타자마자 그 자리에서 몇 개 까먹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자기들 딴에는 수고비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으로 아주 당연하게 먹는 것이었다. 배포가 좀 큰 놈은 두개씩 먹었다. 그래서 우유가 항상 대여섯개 모자랐고 우유를 못먹은 아이들은 못먹은대로 팔자려니 생각하고 선생님한테 이르거나 하진 않았다.
    나는 그 즈음에 우유값 삥땅치는 걸 배웠다.
    그 오묘한 스릴이 재미있어 견딜수 없을 지경이었다. 난 방학보다 우유급식 안내문 나오는 날을 더 기다렸다. 우유값을 삥땅친 돈으로 종민이를 기다리는 동안 동석이와 학교앞 문방구에서 노가리를 구워먹었다. 그런 중에는 종민이가 2박 3일로 특별 지옥훈련을 받는대도 기다릴 자신 있었다.
    우유값을 삥땅쳤다고 우유를 안먹은 건 아니다.
    오히려 동석이와 우유를 타러다니며 꾸역꾸역 두개씩 먹었다. 동석이와 같이 다니면 허접쓰레기 같은 서열도 안되는 놈들이 왜 너희만 우유 타러 다니느냐고 따지지 않아서 좋았다. 따지기 좋아하는 놈들 때려주는 것두 귀찮을 때가 있는 법이다.
    2)
    남자애들 사이에는 싸움 서열이 죽 정해져 있었다.
    동석이가 그 제일 위에 있었다. 그는 4학년 전체 톱이었다. 4학년들 사이에선 지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동석이 이하로 줄줄줄 내려 오다가 나는 10등 정도에 랭크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반애들 전체와 한번씩 붙어보고 정해진 서열은 아니고 그동안의 전적을 근거로한 말싸움으로 정해졌는데 거기에 불만이 있으면 그때 진짜로 붙어보면 되는 거였다. 상위 레벨은 제일 뒤에 앉은 애들이 거의 차지했는데 앞에서 세번째 앉은 내가 10위에 랭크되기까진 엄청난 말싸움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동석이 다음으로 2위에 랭크된 애는 경태라는 녀석이었다.
    얼굴이 까매서 이름보다는 깜뎅이아니면 깜태라는 별명으로 더 잘 불리웠다. 그 녀석은 항상 기지바지 같은걸 줄여입고 다녔고 교실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앉아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그 우중충함은 마치 냄새처럼 녀석에게서 풍겨나와 주위로 스멀스멀 퍼져 나왔는데 하늘이 맑은 찬란한 날에도 녀석의 주위에서 그런 우중충함이 느껴졌다.
    경태는 반에서 키가 가장 컸다.
    어쩌면 4학년 전체에서 가장 컸는지도 모르겠다. 키 작은 애들이 본다면 아저씨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코메디프로에 나오는 오서방을 보면 경태가 생각나곤 한다.
    난 경태가 싸움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경태와 내가 사는 동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학교를 중심으로 극과 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태랑 같은 동네에 사는 애들 사이에선 유명했던 모양인지 그가 랭킹 2위라는 사실엔 아무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경태와 친한 키 큰 애들은 그를 깜태나 깡태라고 불렀는데 작은 애들은 녀석의 더러운 인상에 기가 죽어서 깍듯이 경태야!라고 불러야 했다. 경태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은게 다행이지. 경태가 만약 경태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면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녀석들이 경태야! 라고 부르는 어투는 선생님~ 하고 부르는 어투만큼이나 공손했다.
    난 다른 큰애들과 마찬가지로 깜뎅아 하고 불렀다.
    왜냐하면 나는 작은 아이들 중에선 가장 싸움 잘하고 가장 달리기가 빨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 그에게 깜뎅이라는 칭호를 쓰기로 작정했을때는 어찌나 떨리던지 '반 서열 10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그정도는 당연하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경태랑 싸우게 되는 상황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작은 애들 중에서 두번째로 싸움 잘하는 찬용이도 경태를 깜뎅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작은 애들 중에선 두 번 째라고는 해도 찬용이와 나는 반 서열상 엄청난 차이가 있었는데... 나는 녀석이 맞자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다고 생각하고 경태의 실력을 보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경태는 그냥 담담했다. "왜?" 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5월쯤부터는 반에서 가장 작은 민규까지도 헤이~! 깜뎅이~ 라고 까불어댔다.
    민규는 자기가 싸움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몸이 약해서 60미터를 22초에 주파하는 주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민이라는 여자애 한테까지 얻어 맞아 코피가 터졌던 전적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힘이 없어서 그렇지 싸움 기술은 경태보다 낫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내 생각엔 민규의 두뇌 구조가 이상했지 싶다. 무슨 마음을 먹고 그런 염치도 없는 말을 나불거렸을까?
    남자애들 사이에선 민규의 서열을 따져주는 걸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당시에 서열이 없는 것은 부랄이 없는 것과 똑같이 여겨졌다. 그러므로 민규는 일종의 불구였다. 고무공을 주먹으로 치고 달리는 짬뽕을 할때도 오징어나 38선을 할 때에도 민규가 어쩌다 끼게 되면(그런 녀석 잘 끼워 주지도 않았지만) 항상 공격에만 가담하는 깍두기만 했다. 그러니까 민규는 공격팀의 전력을 갉아먹는 구실을 하는 존재였다. 공수를 빨리 교체하기 위한 안배였던 것이다. 그런 민규가 싸움 실력 어쩌고 하는 걸 보는게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었다.
    난 그때 이미 강한 놈한텐 강하고 약한 놈한텐 약하고 얄미운 놈한텐 잔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던 터라 어떻게든 민규를 밟아 죽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그걸 눈치 챘는지 민규는 나만 보면 벌벌 기었고 내겐 이렇다할 꼬투리를 잡히지 않았다. 나는 경태를 부추겨 민규와 싸움을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정작 경태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민규와 등하교를 같이하며 친해져갔다. 반 애들의 놀림거리에 불과한 민규와...
    그렇다고 경태가 외모로만 한몫하고 실력은 민규와 놀만큼 형편 없었던 게 아니다. 학기 초 서열을 정하기 시작한 무렵 윗동네 아이들과 아랫동네 아이들이 패가 갈려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윗동네 아이들은 실제의 싸움 실력은 동석이 보다 경태가 낫다고 하였고 아랫동네 아이들은 동석이가 훨씬 낫다고 했다.
    원래 말싸움이라는게 그렇잖은가.
    얼마 되지도 않아 경태는 군인 아저씨를 줘팼고 동석이는 사람을 때려 죽이고 말았다. 그래도 윗동네 아이들이 경태의 실력이 낫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아랫동네 애들이 동석이를 부추겨 경태와 싸움을 붙였다. 경태가 동석이에게 양보를 하는 바람에 별 구경거리 없이 동석이가 1위에 랭크되고 경태는 2위가 되었지만 동석이는 확실히 경태를 어려워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경태의 양보고 뭐고 동석이가 일단 두드려 패서 증명했을 것이다.
    윗동네 애들 사이에선 여전히 경태가 넘버 1으로 자리메김 되어 있었다.
    경태는 국민학교 4학년 답지 않게 의젓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 경태에게 까불거리는 민규를 볼때면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재롱피우는 모습이 연상됐다. 경태는 호칭따위에 신경쓰지 않고 서열같은 것에도 신경쓰지 않고 민규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했고 반 친구로 대했던 것이다. 그런 녀석은 멋이 있었다.
    그래서 난 녀석을 다시
    경태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3)
    그땐 못사는 아이들과 잘사는 아이들이 구분이 잘 됐다.
    꾀죄제하고 못생긴 녀석들은 못사는 집 애들이었고 깔끔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들은 집이 부자였다. 그리고 잘사는 집 녀석들은 공부를 잘 했고 얼굴도 잘 생겼고 못사는 집 놈들은 대체로 공부를 못했으며 얼굴도 못생겼었다.
    예외가 없는건 아니었다.
    용준이라는 녀석은 집은 반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 사는데 지버분하기 이를 데 없구 못생긴 건 비할데 없는 녀석이었다. 입고다니는 옷이나 가지고 다니는 학용품은 모두 비싼 물건 이었지만 공부는 못했고 싸움도 어중간 해서 큰애들 한테는 못까불고 맨날 힘없는 조그만 아니들이나 찍접거렸다. 작은 애들중 두번째로 싸움 잘하는 찬용이는 용준이 밥이었다.
    용준이는 키가 커서 경태와 같이 맨 뒷줄에 앉아있었는데 녀석의 화려한 옷차림은 경태와 선명하게 대비가 됐다. 경때는 용준이 뿐만 아니라 모든 잘사는 집 애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봄이 가까워 지면서 모두들 화사하고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다녔는데 경태는 항상 우중충한 기지바지나 골덴바지가 전부였던 것이다.
    경태는 못사는 아이의 부류에 속했다.
    그리고 깜뎅아 깜뎅아 하구 부르던 시절에는 막상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혼열아였던 것같다. 녀석은 팔다리도 길었고 머리도 빠글빠글 한것이 돌이켜 보면 아무래도 혼혈아다.
    언젠가 학교에서 가정평가조사인가 개나발인가를 했다.
    반 애들이 모두 눈을 감은 다음에 부모님이 모두 안계신 애들이 손을 들고 어머니만 안계신 사람, 아버지가 안계신 사람 순으로 손을 드는 것이었다. 나는 실눈을 뜨고 누가 누가 손을 드나를 살펴보았다. 반 친구들의 아픈 곳을 약점잡고 싶었던 건 아니고 눈을 감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따르기가 싫어서 그랬다.
    부모님이 다 안계신 사람으로는 종천이가 있었다.
    녀석의 아버지는 주정뱅이였는데 어머니는 남편의 술주정을 이기지 못해 도망을 갔고 아버지는 엄마를 찾으러 간다고 나간 지가 2년이 넘는 애였다. 그런데 녀석은 곧죽어도 부모님이 모두 계시다고 고집을 부렸다. 지금 생각해봐도 좀 오묘한 문제다. 과연 종천이는 부모님이 있는 애였을까 없는 애였을까.
    경태는 아버지가 안계신 사람 손 들라고 할때 손을 들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1분단 끝에서 체념하듯 손을 들고있는 경태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마 경태는 혼혈이었을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게 아니라 누군지 모르는 것. 경태는 어머니와 성이 같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혼란스러운 건 아버지가 없는 경태의 기지바지와 골덴바지는 누구의 것이었냐는 거다. 애초에 경태의 것으로 샀을리는 만무한 옷들이었다. 동네 아저씨가 입다 버린걸 주워와서 줄인 것일까?
    난 가끔 그때의 경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덜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땀으로 번질거리는 녀석의 어두컴컴한 이마와 화살처럼 내리 꽃히는 햇살이 평온하지만 절망스러운 모습이었다. 뭉게뭉게 피어난 육중한 구름들이 창문 저 너머에서 꿈틀거렸고 눈부시도록 하얀색과 밝은 회색,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을만한 멋진 장면을 경험할 때가 있는 법이다.
    가령 군대에서 힘든 훈련중 맛있는 담배 한개비 같은 것. 난 그때 두고두고 경태의 모습이 기억에 남게 되리라는고 생각했다. 지금도 눈에 선연히 보인다. 내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그런 걸 어떻게 묘사하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체념하고 받아들이겠다는 경태의 표정. 까만 눈커풀, 배어나오는 땀, 두툼한 입술. 창문 바깥에서 꿈틀꿈틀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여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4)
    여자애들부터 시작해서 짧은 바지나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긴 팔 셔츠와 짧은 바지에 하얀 타이즈가 당시 유행이었는데 유행이랄것두 없이 모두 똑같은 차림이었다. 애들 머리 깍은 모양이나 옷 입고 다니는 거나 마치 군복처럼 똑같은 모습들 뿐이었다. 얼룩무늬가 어디 어디에 배치되어 있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멀리서 보면 얼룩덜룩한 군바리 밖에 더 되겠는가.
    잘 사는 집 애들은 잘사는대로 그래도 이름이 좀 있다는 원아동복이나 부르뎅 같은 걸 입고 다녔고 못사는 집 애들은 못사는 대로 뭐 똑같이 생긴 반바지랑 타이즈를 입고 다녔다. 그 시절엔 다 그랬다.
    경태는 땀을 비질 비질 흘리면서도 우중충한 기지바지와 골덴바지만 입고 다녔다.
    반 애들이 모두 짧은 바지를 입었지만 경태의 차림새는 변하지 않았다. 녀석의 몸에서는 어른들처럼 땀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녀석에겐 그게 잘 어울렸다. 땀냄새 나는대로 꾀죄제한대로 항상 우중충한 옷차림 말고 다른 차림은 상상도 안됐다.
    어느 날 용준이가 경태에게 까불었다.
    민규가 까부는 걸 보고 만만한 생각이 들었던지 아니면 부러웠던지 모양이다. 어쩌면 그 우중충하고 볼품없는 옷차림때문에 경태가 우습게 보였다 보다. 용준이는 그때 경태와 짝이었는데 경태에게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이었다.
    -넌 씻고 다닌긴 하냐? 냄새 나잖아..
    -옷 좀 빨아 입고 다녀..
    뭐 그런 말들을 했던거 같다. 경태가 아무 말 없자 녀석은 기세가 등등해서 계속 까불어댔다.
    경태가 벌떡 일어섰다.
    용준이는 그 순간 하얗게 질리는 것이었다. 경태는 그런 용준이를 책상에 어퍼놓고 쿵쿵 소리가 교실을 울리도록 등짝을 몇 대 때렸다. 용준이의 목에서 깽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깽 했다.. '윽'이나 '억'이 아니고 '아야~!' 도 아니고 깽~ 이었다.
    신체 발달이 빠른 아이들은 뭐든 빠른 법이다.
    달리기도 빠르고 주먹도 빠르고 조숙한 정도도 다른 애들보다 빨랐다. 몰려다니던 애들은 외모에 신경을 쓰고 멋을 부리고 다녔다. 가령 나는 긴팔 셔츠 위에 청조끼를 입고 다녔는데 어디서나 눈에 잘띄는 모습이어서 썩 마음에 들었다. 동석이는 가슴에 배찌를 달고 다녔고 종민이는 스파이더맨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하여튼 좀 빠르다 싶은 애들은 사춘기 비슷한 어떤 특징을 나타냈다. 그때 나이키가 처음 들어왔다. 당시 우리들의 최고 관심사는 바로 그 나이키 운동화였다. 나이키가 아니어도 뭐 비슷한 비비화를 신고 다니는 게 당시 우리 모두의 바램이었다. 우리는 '기차표 캐미슈즈' 따위를 신고 다니는 민규같은 애들과 우리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작은 애들은 거의 다 '기차표 캐미슈즈'나 '그레이트 마징가Z' 라는 요상한 로보트가 그려진 '왕자표 아동화'따위를 신고 다녔다.
    경태도 그런걸 신고 다녔다.
    그러나 경태는 나이키 운동화나 청조끼, 스파이더맨 그림의 티셔츠따위르 부러워 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항상 칙칙한 셔츠에 기지바지나 골덴 바지 같은 걸 입고 다니면서 자기의 옷차림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남들의 옷차림을 부러워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엄숙하고 고독해보였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위의 말이다. 엄숙하고 고독한 모습. 한껏 멋을 부리는 우리와 잘 어울리지 않고 민규와 함께 등하교를 하는 경태의 모습은 바로 그랬다. 그런 그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기엔 내 실력에 문제가 조금 있다. 경태를 무협지에 등장시키면 꽤 멋있는 낭인 무사가 될 것이다.
    5)
    그러던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경태가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경태가 아주 짧은 청반바지와 하야 타이즈를 입고 등교를 한 것이다.
    난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아주 짧은 청 반바지에 하얀 타이즈. 그것은 녀석의 시커먼 얼굴과 너무나 선명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난 그런 코메디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웃을 수 없었다. 그냥 웃기엔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난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어디선가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일단의 소동이 벌어졌다. 반 애들이 그렇게 모두 힘을 모아 열렬하게 소리지르며 웃는 걸, 그렇게 악을 쓰며 격렬하게 목청이 터져라 웃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말로 반이 떠나가라 웃어제꼈던 것이다.옆반에서도 경태를 구경하러 왔다. 이 웃음소리는 교무실까지 들렸다. 웃음 소리를 듣고 담임 선생이 달려올 때까지 소동이 계속됐다.
    난 진한 초콜렛빛의 녀석의 얼굴이 씨뻘겋게 달아 오르는걸 보았다. 시꺼먼 가마솥을 달구듯 녀석의 얼굴이 붉은빛을 띄우기 시작했고 눈엔 핏발이 섰다. 녀석은 고개를 숙인채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으로 본 녀석의 화내는 모습이었다.단 한번의 싸움도 없이 서열 2위에 올랐던 경태. 아버지가 안계시다는 사실을 묵묵히 인정하던 경태. 민규가 놀릴 때에도 의젓하던 경태. 항상 엄숙한 그런 경태의 가오가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녀석은 그냥 놀림감이었다.
    - 에이 씨팔!..엄마때문에..
    그게 경태가 중얼거린 한마디였다.
    시장에서 일하는 경태 어머니는 아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반바지와 타이즈 입은 걸 보고 싶었던 걸까..? 어쩌다가 돈이 생기자 맨날 기지바지나 줄여 입고 다니는 아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던 걸까..? 경태가 다른 집 아이들 처럼 귀엽고 예쁘길 바랬던 건 아닌지..?
    경태는 절대로 귀엽거나 예쁜 아이가 아니었다.
    경태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녀석의 주위에서 밤이 피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녀석이 반바지 입은 걸다시는 보지 못했다. 8월 한여름에도 녀석은 우중충한 기지바지와 골덴바지를 입고 다녔다. 꾀죄제한대로 우중충한대로 녀석에겐 그게 어울렸다.
    녀석은 가을이 가장 반가웠을거다.
      6)
    하늘이 맑다.
    이제 비 한번 내릴 때마다 바람이 차가워 질 것이다.
    수유의 나무들은 이제 낮이 다소 뜨겁더라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냥 노련하고 너그럽게 받아 들이고 있다. 빛과 열을 그리워 할 날이 곧 올 거라는 걸 이제 알기 때문이다.
    지금, 새벽 3시 넘은 창 밖으로는 가을 벌레가 운다.
    지난 여름 어느 날 피곤에 지친 나는 샤워를 한 후 방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텔레비전을 켜니 투니버스에서 '추억은 방울방울'의 뮤직 비디오를 하고 있었다. 뮤직비디오만 가지고 짐작해 보건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테크닉과 구성이 멋있게 느껴졌다.
    흔하고 가볍지만 가슴에 와닿는 주제가 로즈..
    내가 원하는 걸 이루게 되는 날 그렇게 피곤에 지쳐 잠시 누워 쉬는 걸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될거라고 생각했다.
    난 친구와 같이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러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여름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여름엔 무척 바빴던 것이다. 나는 무엇에 취한 것처럼..열에 들떠..모욕을 참으며..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태까지 내가 지내왔던 것과는 다른 일들이...
    난 진심으로 꿈을 꾸고 있었다.
    수양버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육중한 햇볕을 한짐씩 짊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난 진지한 꿈을 꾸었고, 사람들이 떠내려가고 집들이 물에 잠기는 동안에도 열에 들뜬 것처럼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난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냥 백일몽이었던 모양이다. 난 보기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나 같은 걸 거절하는 데는 조금의 고민도 필요 없다는 듯한 단호하고 깨끗한 거절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거절당한 저녁에 나와 친구는 어느 보일라실 같은 지하다방에서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았다.
    내내 경태 생각이 났다.
    지난 여름 너무 더워서 정신이 이상해진 나는 반바지를 입었었나 보다.
    영화를 보는 중에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거기에 주인공 소녀를 내심 좋아하는 녀석이 나오는데 그녀석은 그 소녀만 보면 잔뜩 불량스러운 지꺼리를 해대는 것이었다. 침을 퉤퉤 뱉으면서 욕을 찍찍 해대는.. 그 친구는 소녀에게 거절당하는게 두려워서 애초에 청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건 다소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왜 바보같은 짓을 했던가... 부끄러웠다. 청하지 않았어야 했다.
    머리가 어떻게 됐었던 모양이다.
    7)
    이제 하늘이 맑다.
    시야가 트이고 정신이 드는 시절이다.
    이제 힘들여 뭔가를 할 때는 지났다..
    뒷산엔 밤이 영글어 있다.
    밤송이의 큰 아람은 맛이 아직 씁쓸했다. 이제 곧 밤이 길어지는 만큼 단맛이 들테지.. 가을은 그렇게 단 맛이 드는 계절일 뿐이고 열매는 여름에 맺는 법이다. 가을엔 느긋하게 쉬거나 기도나 할 뿐이지 일을 하지 않는 법이다. 좋은 것은 더 좋아질수 있지만 나쁜 것을 좋게 할 때는 이미 지났다.
    벌레먹은 것은 벌레 먹은 대로 단맛이 들고, 큰 것대로 작은 것대로 익어갈테고 쭉정이는 쭉정이인채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지난 여름의 백수는 가을에도 백수로 남고 양아치는 양아치로 남을 것이다.
    지난 여름 좋았던 관계는 좋은 관계로 남고
    나빴던 사람은 잊혀져 갈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by 인디고울프 | 2007/03/15 23:08 | 익살맞고 쓸쓸한.. | 트랙백 | 덧글(0)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감독 : 비탈리 카네브스키 (Vitali Kanevsky)  

주연 : 파벨 나자로프(Pavel Nazarov),  디나라 드루카로바(Dinara Drukarova)

 

구소련 마지막 영화.

 

1947년 소련의 탄광도시 스촨.  12살 난 발레르카는 매춘부인 엄마 니나와 함께 살고 있다. 시장에서 차를 파는 여자친구 갈리아를 보고 함께 차를 팔기 시작하는 발레르카. 전쟁으로 인한 장애자들, 정신병자들, 일본 죄수들, 배급 때문에 아우성치는 사람들,  그리고 긴 구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임신하려는 15살의 뼈만 남은 소녀...  

 

 

전형적인 양아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수작! 양아치 평점 별 네 개 반.

 - 실제의 양아치를 배우로 등용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인다

  1)   
누구에게나 촉망받는 어린시절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나쁜 놈일지라도 아주 어렸을 때는 장군감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지 허! 그놈 싸가지가 노랗군 이라는 말을 듣기는 힘들다. 어린 아이들에게 있는 무한한 꿈과 가능성을 무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물론 있었다. 난 작고 똑똑했으며 빨리 달리는 아이였고 뭔가 시시껍절한 감투를 쓰고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그런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이야기다. (난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좋다 김영사미가 해놓은 일이니 뭔가 병신같은 짓일 거라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평등의 어감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자니 '꿈'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해 놓은 일이 아무 것도 없었고 추억이란 것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난 2학년까지는 그로이저X와 볼테스V 등의 영향으로 과학자가 되고자 했다. 멋진 로봇을 타고 우주 악당들과 상대해 싸우면 모든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좀더 먹고나니 과학자들이란게 로보트를 만들었을 뿐이지 맨날 납치나 당하고 씨알먹지 않은 소리나 삑삑해대서 전투를 방해하는 노털이라는 걸 마징가Z 등을 통해 깨달았다. 난 로보트 조종사라는 다소 우스꽝 스런 명칭의 직업으로 진로수정을 해야만 했다. 좀 더 나이를 먹은 뒤에는 그런 전투 로보트를 조정하려면 군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군인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의 로봇 공학은 조잡하기 짝이 없는 수준으로서 당가도A같은 수준의 전투 로보트는 나 아니면 만들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세계로봇박람회라는 걸 다녀와서 부터다. 애들 장난감 수준의 쇳덩이를 로봇라고 전시해 놓고 입장료를 받다니...
난 진심으로 고민을 했다. 내가 로보트를 손수 만들어야 하는가 아닌가를... 내가 로보트를 만들고 쇠돌이 같은 불한당 녀석이 타게되면 죽 쒀서 남 주는 격이고, 난 닭 쫓던 개꼴이 되는 거 아닌가. 내게는 일종의 방황의 시기였는데 뭘 해야 좋을 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
5학년 때의 꿈은 '칸나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
황폐해진 파리시내 곳곳에 칸나 꽃을 심어 가꾸었다는 파리의 청소부 '칸나할아버지'. 죽 쒀서 쇠돌이에게 주느니 쓰레기나 치우자는 심정이었나 보다. 학기 초에 있었던 '나의 꿈'이라는 글짓기 시간에 난 그런 내 결심을 진지하게 발표해서 일대 웃음바다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쇠돌이 얘기 나오는 본심은 빼고 안빈낙도니 유유자적이니 하며 까대는 글이었는데 모두들 감동어린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칸나할아버지가 청소부였다는 구절에서는 모두 다 와아~ 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린 것이다. 그때 얼마나 쑥스럽던지 난 반 애들 모두를 죽여버리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오직 담임 선생님만 웃지 않았다.
게다가 훌륭한 생각이라고 칭찬까지 해 주시며 내가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정말로 그렇게 믿는 눈치였다. 10여년이 지난 연후에 내가 양아치가 되리란 건 아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길 기대했고 난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다. 내게 구르몽의 시도 가르쳐 주시고 워즈워드와 붓세의 시를 가르쳐 주셨다. 그 때야말로 스승의 은혜와 스승의 사랑을 실감하던 나날이었다.
나 뿐 아니라 모두 그랬다.
그때 같은 반 이었던 아이들은 누구나 선생님에 대한 진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선생님께 대한 고마운 추억 한가지 씩은 가지고있다.
단, 성윤이만은 예외였다.
그는 선생님을 씨발년이라고 불렀다.
녀석은 항상 말썽만 피우는 반 최고의 골치거리였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그놈을 사람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그는 도통 요지 부동이었다. 타일러도 안되고 때려도 안되고 수단 방법이 없는 괴물같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시대를 앞서갔다.
당시 선생이면 최고의 권위를 지닌 성스러운 존재 비슷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녀석은 거침없이 담임선생에게 '씨발년을 주겨버린다'느니 하는 욕을 해댔다. 난 6학년때의 담임선생부터는 님자를 생략할 수 있었고 쌍욕을 뒤섞은 뒷다마를 깔 수 있었는데 녀석은 그때 이미 거침없이 마구 나갔다. 닥치는 대로 욕을 하고 침을 뱉았다.
녀석은 시대를 앞서 나가는 불량기를 보였기 때문에 반 애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 했고 그에겐 별다른 친구가 없었다. 사실 성윤이의 싸움 서열은 5위 정도였지만 녀석은 악발이라서 깡으로는 서열 1위였다. 아무도 그에게 찍접거리지 않았다. 난 녀석을 보면서 깡패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난 건지를 짐작했다.
3)
나에겐 항상 친구와 원수가 있었다.
반애들 모두와 친한 건 아이들의 당연한 특성이지만 원수가 있었던건 언제부터인지 잘난척하는 쫀쫀한 녀석을을 참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바로 옆집 살던 정석이였다.
그 녀석은 4학년 겨울 방학 때 대구에서 이사를 왔는데 미끈하게 생긴 첫인상이 상당히 괜찮은 녀석이었다. 우리는 단박에 친해져서 매일 등하교를 같이 했다. 녀석이 항상 왼쪽에서 걸었고 나는 오른쪽에서 걸었는데 그 바람에 나는 지금도 고개가 오른쪽으로는 잘 안돌아간다.
그 다음은 진호.
진호는 나와 친하다기 보다는 정석이를 좋아해서 따라 다니는 녀석이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매일 세명이 붙어다녔다. 진호는 쫀쫀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는데 서열두 안되는 놈이 조금만 잘 대해주면 어줍잖은 농담을 하며 기어 올랐다. 세상에, 4학년 전체 서열 10위 권에 드는 동석이도 하지 않는 농담을 진호가 내게 마구 하는 것이다.
난 자존심이 몇번 상했지만 정석이의 얼굴을 봐서 참다가 기회를 봐서 진호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했는데 그 이후로 나를 꺼려했고 나와 단둘이 있게 되는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난 또 그게 재미가 있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진호를 갈궜다.
다 갈군 후에는 장난이었다는 말로 엿을 메겼다.
하여튼 좀 얄미운 놈이었다.
그리고 기웅이.
안그래도 엊그저께 기웅이를 만나 술을 한잔 나누며 국민학교 5학년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땐 기웅이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우린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중3때와 고2때 같은 반 이었다. 녀석과 친해진 건 고2때다.
그리고 성윤이.
나는 성윤이와도 친했다. 다른 아이들이 쓰레기취급을 하며 두려워하던 인물이었지만 칸나할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나는 별 거리낌이 없었고. 성윤이도 의외로 순진하고 착한 구석이 있어서 우리는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성윤이도 진호를 싫어했기에 가끔은 함께 진호를 갈구기도 했다.
3)
우리는 모두 개천가에 살았다.
아마 반 아이들 대부분이 개천가에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아이들이 개천을 따라 등교를 하고 하교를 했다. 학교를 중심으로 성윤이는 윗동네에 살았고 나와 정석이와 진호는 아랫동네에 살았다.
나와 정석이 진호는 늘 함께 하교 했는데 개천을 따라 죽 내려오며 돌을 던져 물수제비 띄우는 놀이를 하거나 높은 축대에서 뛰어 내리는 내기를 했다. 그런 것두 놀이라고..
그게 뭐하자는 수작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없이 돌을 던지고 좋아하는거다. 그리고 높은 축대에서 실없이 뛰어내리고 나서는 여기저기서 뻐기고 다니는 거였다.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난 높은 축대에서 뛰어내리기 기록 보유자였다. 한 3미터 높이는 됐던거 같다. 거긴 축대가 아니고 다리였다. 그런 던지고 뛰어내리는 놀이는 윗동네나 아랫동네나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성윤이는 달랐다.
어느 날 나는 성윤이네 놀러가기로 했다. 개천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 길이 좀 이색적이긴 했지만 뭐 평소에 하던대로 나는 돌을 주워 들고 개천에 던져 물수제비나 띄워야지 했는데 성윤이는 생각이 달랐다.
자기는 개천바닥에 돌을 던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따 던져?
-물론 가로등이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녀석은 벌써 주먹만한 돌을 던져 D여대 앞의 가로등 하나를 박살을 냈다. 그러자 수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오금이 저리는 동시에 이 돌발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제대로 돌을 던질 수가 없었다. 내가 던진 돌은 형편없이 빗나갔다. 다시 하나 던졌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런 병신~!
성윤이가 돌을 던져 나머지 가로등도 모두 박살을 냈다. 그리고 달려오는 수위에게도 돌을 하나 던지고 나서야 달리는 것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수위가 따라오지 않는걸 확인하고는 우리는 다시 개천가의 가로등을 깼다.
성윤이는 가로등을 겨냥해 돌을 던지고 빨래터 아줌마들이 윽박질러대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난 동네 아줌마들이 지르는 소리가 겁났지만 성윤이는 달랐다. 정말로 뛰어서 쫓아오지 않는이상은 성윤이는 천천히 걸었고 침착하게 돌을 던져 가로등을 깼다.
그날 우리는 참 많이 쫓겨 다녔다.
가장 많았던거 같다. 뻔데기 아저씨한테도 쫓기고 런닝셔츠입은 할아버지 한테도 쫓기고 급기야 경찰한테도 쫓겨다녔다.
우리는 시장통으로 숨어들었다.
4)
성윤이네 집엔 아무도 없었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의 아버지는 주정뱅이고 어머니는 번데기를 판다고 했다. 그런 집에 동화책이나 장난감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난 금방 실증이 났다. 성윤이도 집에 있기가 싫은 눈치였다.
나는 집에 가겠다고 했고 성윤이는 D여대 뒷길로 해서 나늘 집까지 바래다 주고는 밥먹고 가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속절없이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난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동화책을 한권 빌려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북유럽 동화집이었는데. 그게 윤성이가 끝까지 읽은 최초의 책이었고 다음에 빌려준 톰소여의 모험이 두 번째 책이었다.
D여대 뒷길은 솔밭과 더불어 깡패 많기로 이름난 곳이었다.,
성윤이는 그들 거의 대부분과 알고 지내는 것 같았다.
나는 성윤이네 집에 일차로 들렀다가 D여대 뒷길로 우리 집에 오는 코스를 즐겨 이용했다.
그 길은 굉장히 길고 운치있었다.
수유리 D여대를 다닌 사람이 있다면 혹시 알 것이다. 그 길고 긴 플라타너스 길.. 지금은 높은 담장이 플라타너스를 감싸 버렸지만 그땐 길가에 플라타너스가 있었고 낮고 허름한 담장이 그 바깥에 있었다. 5월이나 6월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길을 걸어 내려오며 성윤이와 나는 톰소여의 모험, 로빈훗의 모험, 15소년 표류기 등에 관한 얘기를 했고 로보트 태권브이와 얄미운 쇠돌이에 관한 얘기도 했다.
성윤이는 톰소여의 모험을 제일 좋아했다.
그리고 자기도 톰소여의 모험 같은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난 성윤이가 그런 말을 해서 몹시 놀랐다. 난 칸나할아버지가 꿈인데 성윤이가 마크트웨인같은 소설가가 된다면.... 좀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깡패에게 된통 걸렸다.
성윤이가 아는 형들이었는데 그 녀석들은 성윤이를 벼르고 있던 중이었다. 성윤이가 며칠 새 걔네들 노는 데 잘 끼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나와 성윤이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는데 성윤이가 얻어터지면서도 나는 집에 보내주라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난 죽다 살아났다.
-쟤네 아빠 경찰이예요 형! 쟤는 그냥 보내줘요.
성윤이가 곱상하게 애원하듯 말하는 걸 그때 처음 보았다.
맨날 침이나 찍찍뱉고 씨발이나 남발하는줄 알았는데....
-너네 아빠 정말 경찰이야?
웬 딸딸이 같이 생긴 놈이 얼굴을 험상굿게 찌그러트리며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술집주인이었지만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성윤이는 아마 앵벌이를 했었던 것 같다.
만만한 성윤이를 시켜서 앵벌이를 했겠지. 그땐 그런게 유행이었다. 고등학교에서 힘쓰는 녀석 밑에 있는 똘마니 들은 국민학생들을 잡아다가 앵벌이를 시키고 자기네 보스의 용돈을 대줬다. 성윤이의 나이를 초월한, 끓어 넘치는 불량기도 그런 녀석들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겠지..
난 참 후회스럽다. 내게 깡만 조금 더 있었으면 거짓말을 슬슬해서 성윤이까지 구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다음 날 성윤이는 결석했다.
녀석들에게 많이 맞아서 집에 누워있었다. 난 왜 신고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고 성윤이는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5)
얘기를 하다보니 분위기가 이상해졌는데 성윤이가 무슨 성냥팔이 소녀 식의 그런 불쌍하고 가련한 녀석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쾌하고 즐거운 녀석이었다. 녀석의 주위엔 웃음과 사고가 떠날 날이 없었다.
하루라도 사고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었고. 아무리 욕을 먹고 얻어 맞아도 녀석의 입가엔 짓궂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뭐 나쁜게 말하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옷갈아 입는 걸 훔쳐보다가 걸린 적이 있다.
역시 녀석은 시대를 앞서갔다. 선생님도 국민학교 5학년 짜리 녀석에게 그런 봉변을 당한게 어이가 없었던지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성윤이를 때리거나 욕하거나 하지 않았다.
성윤이도 그날은 조용히 보냈으면 좋았겠지만 '철수엄마! 시장 갑시다'라는 식의 야설을 풀어댔다. 난 성윤이가 너무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성윤이가 좋았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선생님 보지 개보지'라는 낙서가 교실 벽에서 발견됐다. 그건 분명 성윤이가 한게 아니다. 성윤이는 절대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요샌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게 참 큰 사건이었다. 감히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선생님 보지를 개보지라고 하다니.. 그 누구도 상상 못할 일이었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나가버렸고 당시 선생님을 짝사랑 하던 옆반 남선생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누군지 자수 할 때까지 집에 안보내 준다는 거였다.
그 꼴갖잖은 온갖 감언이설과 공갈협박..
-사나이라면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질고 용서를 빌어야지...
-한 사람 때문에 반 친구들이 이렇게 고통 당해서 되겠어?
-이렇게 자라서 너희들이 뭐가 될거 같아? 자수하고 광명 찾아!
-누가 했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먼저 가게 해주지.
라는 말을 끝으로 선생은 애들을 가둬 둔 채로 어디론가 가버렸고(아마 우리 담임 선생님을 위로 하러 갔거나 교무실에 찾아 온 학부모에세 사정 설명을 하러 갔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반 애들이 그런 단체 기합의 책임을 성윤이에게 돌린다는 것이었다. 선생이 개지랄을 떠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 성윤이 밖에 없었다,
-야! 너 선생님한테 가서 자수하고 잘못했다고 말해.
반장이던 돼지같은 현준이가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서열 10위 밖에 있는 놈인데 배가 고파서 어지간히 악이 받쳤던 모양이다.
-그거 내가 한거 아냐!
성윤이가 마주 소리 질렀다.
-너 아니면 누구야?
-누군지 내가 알아?
-맨날 너 때문에 이게 뭐냐? 교실 분위기 엉망되고. 선생님은 울고 우린 집에도 못가고. 맨날 너만 말썽이잖아.
현준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함쳐댔다.(그 녀석은 나중에 법대를 갔다. 멍청한 새끼...)
난 현준이에게 특별한 증거나 증인없이 성윤이를 몰아세우는 건 잘못이라고 했다. 현준이는 나는 말할 자격 없으니 빠지라고 했다. 학급임원이라는게 성윤이와 친하게 지내는건 수치라고 했다.
-지랄마! 씹새끼야!
나도 열이 번쩍 나서 윽박질렀다.
난 비록 자라서 칸나 할아버지 같은 청소부가 될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 게 될 지라도 내가 너같은 녀석한테 업신여김 당할 이유는 없다고 소리쳤다.
소리쳐놓고 보니 멋있는 말이었던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때 담임 선생님이 퉁퉁부은 눈으로 들어오더니 애써 웃는 얼굴을 만들며 종례를 하고 집에 보내주셨다. 여러분에게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집에 오는 길에 별이 떠 있었다.
6)
난 가끔 성윤이가 그렇게 하루하루 넘기는게 불안스러웠다. 왜 저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걸까. 선생님이 성윤이에게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데도 성윤이는 도무지 막무가내였다. 난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이 저만큼 했으면 충분히 했다고 여겼다.
어느 비오는 토요일이었다.
그때 장마가 몹시 져서 등교를 못한 애들이 많았는데 결석처리를 하지 않았고 수업도 없이 그냥 시간만 보냈다. 그날 학교를 안갔으면 좋았을 텐데.. 난 지금도 그 날 학교 간걸 후회하곤 한다.
정석이와 나는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허벅지 까지 빠지는 물살을 헤치고 등교를 했던 것이다.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낮인데도 불구하고 교실은 칙칙하기 이를데 없었다.
선생님은 애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책상에 앉아계셨고 나는 북한산 자락에서 꿈틀꿈틀 용틀임하는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떠들었다.
수근수근거리는 소리는 빗소리와 섞여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우중충한 하늘 아래서 더없이 칙칙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사람의 기분을 참 엿같이 만들어 버렸다.
비 오는 날엔 실내에선 조용히 해야 하는 법이다.
그날 성윤이는 별 것도 아닌 일로 떠들다가 선생님한테 된통 혼이 났다.
성윤이는 그날은 정말 평소에 비하면 시체처럼 얌전히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이 성윤이를 야단치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선생님이 그때껏 참고 참았던게 일시에 터졌던 모양이다. 아니면 선생님의 집에 물난리가 났음에도 출근을 해서 기분이 안좋았거나.
그때가 2교시 였는데 4교시 토요일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선생님은 성윤이를 세원 둔채 꾸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렇게 화 내는 걸 처음 보았다. 교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두시간동안 아무도 화장실에 가지 못했지만 오줌이 마렵다는 아이도 없었다.
모두들 선생님의 분노에 얼어붙어 버렸던 것이다.
오직 성윤이만 제외하고.
성윤이는 책상머리를 손으로 짚어 체중을 분산 시키며 기우뚱한 자세로 서 있었는데 가끔씩 손바닥으로 눈을 꾹꾹 눌렀다. 자신의 죄과가 너무 엄청나서 흘리는 눈물을 닦으려 했던게 아니고 따분해서 그러는 거였다.
-이년이 비가 많이 와서 미쳤나.. 오늘 왜 이래..?
하는 성윤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선생님이 저렇게 화를 내고 있는데 성윤이를 삐딱한 자세는 잘못된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선생임이 그만큼이나 참으며 감싸줬는데...
성윤이는 정말로 지겨워 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씩 콧물을 훌쩍 들여 마시며 손바닥으로 눈을 꾹 눌렀다가 머리를 한번씩 쓸어넘겼는데 그의 얼굴엔 털끝만한 반성의 기미도 없었다.
하긴 그날은 평소에 비하면 시체처럼 얌전했었으니까...
선생님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거다.
몇마디 하고 말 생각이었는데 성윤이가 전혀 듣질않자 울화가 터졌던 것일 게다.
성윤이가 일어선지 2시간이 막 지나는 시점에서 선생님은 성윤이와 친한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우리 반 애들은 다 착하고 말 잘 듣는데 왜 너만 이렇게 말썽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니가 그러는거 딴 애들은 좋아하니? 선생님만 싫어하고 딴애들은 너 좋아하는 거니? 어디 우리 반에 성윤이와 친한 애 있으면 손 한번 들어봐라.
난 성윤이와 친했고 성윤이가 좋았다.
그러나 선생님도 좋아했고 사랑받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분명히 아무도 손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때 내가 손을 든다면 선생님을 엿메기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참으로 심란하고 어려운 선택이었다.
성윤이를 택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성윤이를 제외한 소수의 그룹에 가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이었다.
나는 맹세코 엘리트주의의 소그룹을 싫어하고 귀족주의에 구역질을 느낀다. 난 닫힌 단체가 싫다. 모든 단체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원하는 사람에겐 모두.. 그렇지 않고 소수 잘난척 하는 몇놈만 판치는 그런 그룹은 폭탄 테러를 해서라도 엿을 메기고 싶다.
그러나 그때 난 손을 들지 않았다.
선생님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 하지만 개같은 수작이다.
성윤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난 고개를 숙였다.
성윤이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눈을 꾹꾹 누른다던가 머리를 쓸어 넘기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거봐! 우리 반에 너를 좋아하는 애 는 아무도 없어. 애들은 다 너 싫어해.. 넌 우리 반의 암 같은 존재야. 그런데 괜히 너만 혼자 신나서 그렇게 까부는 거야.
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는 동안 난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선생님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까 마음 고쳐먹고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새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성윤이 너도 뭔가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하자는 말로 끝을 내고 종례를 했다.
- 너..나랑 친하잖아.. 에이 새끼..
성윤이는 병든 개처럼 끙끙거리는 소리로 슬프게 말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죽었다는걸 한참 후에 깨달았다.
그날 이후의 세상은 전혀 새로운 어떤 곳이었고 난 적응하기 힘들었다.
성윤이는 잠시 동안의 슬픔에 빠졌다가 사람을 죽였다. 그 사이에 우여 곡절이야 있었겠지만 나는 하여튼 윤성이 앞에 개새끼다.
6)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를 보았다.
영화사적으로 어쩌고 저쩌고는 애처에 모르고 촬영기법 같은 건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정신분석학을 동원한 영화의 해석이나 감독의 무의식의 해부는 난 모른다.
난 그냥 발레르카에 대해 생각해본다.
항상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뭔가 큰일을 저지를 것처럼 우왕 좌왕 돌아다니는 모습.. 손바닥으로 오줌을 받는 수모를 받은 후 각목으로 친구의 머리를 쳐서 자기 가오를 지키려 하는 모습과 한번 당한 수모는 반드시 갚는 발레르카는 양아치였다..
당시의 숨막히는 사회.
저마다 열심히 살고있다.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노래하면서 엿같은 세상이라고 말들 하면서도 꾸역꾸역 잘들 살고있는 것이다. 비슷한 사람끼리 엿먹고 메기면서...
좌충우돌 하면서 뭔가 하려고 하는 것은 발레르카 뿐이다. 그게 별다른 결과가 생기지 않는 일들이긴 하지만 화장실에 이스트도 뿌리고(구린 놈들 뒤를 캐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인 포로들에게 차도 가져다 주며 일본어를 배우려 하고 갈리아와 함께 차를 팔아 용돈을 모은다.
꼰대들이 보기엔 이런 행동들이 아니꼬웠을 것이다.
꼰대들은 자기들이 숨통을 움켜 쥐고 좌지우지하는 걸 좋아하지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혼자서도 잘하는 놈들은 숙청의 대상이다.
정부가 죽였든 조직 폭력배가 죽였든 시대의 분위기가 죽인 것이다.
그러나 발레르카는 죽었는가?
그는 결코 죽지 않는다.
얼지만 죽지마 부활할꺼야.
이건 일종의 경고다.
양아치는 죽지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원한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썰매를 빼앗긴 뒤에 미친 듯한 눈빛을 하고 다니던 발레르카.
화장실에 이스트나 넣던 발레르카에게 따뜻한 차를 파는 법을 가르쳤던 갈리아. 갈리아라는 구원의 열쇠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양아치를 죽이기 위한 억압은 양아치의 친구만 죽일뿐이다.
그리고 양아치는 이제 폭주할 것이다.
-두고보자! 내 곧 살아날테니..
혼수상태에서도 자신의 무의식에 빠져 저주를 되새김하는 발레르카의 모습이 보인다.
-다 죽여 버릴테다. 씨발놈들..
영화관을 나설때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고 좋았다.
그래서 조금 슬펐다.
성윤이는 지금 부산 교도소에 있다.
얼마 전에 기웅이와 만나 술을 마시며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이야기를 하다가 성윤이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했다.
성윤이가 마크 트웨인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나 말고 누가 알고 있을까..? 그리고 경험한 나 말고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쏘주가 썼다.
나는 나쁜 놈이다.

이글루스 가든 - 내맘대로 영화해석
by 인디고울프 | 2007/03/15 22:48 | 익살맞고 쓸쓸한.. | 트랙백 | 덧글(0)
배고팠던 날

 배고팠던 날..


    내 직업은 양아치. 돈은 많은데 놀 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다니며 놀게 해 주는 게 나의 임무다. 나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이트, 룸싸롱 등을 전전 하지만 내가 돈이 썩어놔서 그러는 건 아니다. 세상은 공평하다.

    옛날 내 여자친구의 말을 빌자면 까뮈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돈이란 행복하고자 할때 시간을 벌어준다.'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도 멋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손님을 꼬실때 주로 써먹는 레파토리가 됐다.

    세상은 공평하다. 돈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도 시간이 없어서 노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며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
    그렇다고 내가 막 돼먹은 녀석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나에게도 가정이 있고 친구와 애인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공과 사를 구분 할 줄 안다는 얘기다. 내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이 신종직종이다보니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라 독립투사라는 직업도 막 생겼을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구박과 박해를 받아야 했던 가를....

    내 말에 말꼬리 잡는 녀석들은 저까튼 씨밸넘들이다. 박치기 한방 날아가기 전에 잠자코 듣기나 해라.
    나는 제비가 아니다. 제비는 돈 많은 여자를 꼬셔서 한 밑천 잡아 보려하지만 나는 그냥 함께 즐기고 싶을 뿐이다. 놀아주지도 않고 돈을 받는다거나 놀아 줄 생각도 없으면서 밥을 얻어 먹는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자존심이 허락 못한다.

    1)
    벤취에서 모자란 아침 잠을 보충하고 있던 나는 으실으실한 한기 때문에 잠에서 깼다. 골이 핑 한게 약간 어지러웠다. 근처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지만 정신이 들지 않았다.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초췌해져 가는 거 같아서 오히려 골치가 더 아팠다. 나는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할 거 같아서 새옷이나 갈아 입을 까 해서 명동까지 슬슬 걸었다.

    명동의류를 나는 주로 이용한다. 요샌 동대문으로도 많이들 다니는 모양이지만 나는 작업복을 주로 명동의류에서 구입한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고지식한 구석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서 구입하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컨디션이 좋으면 백화점 대리점 안가리고 온갖 종류의 메이커 옷을 뽀리질 하지만 컨디션이 않좋을 수록 점잖고 싶은 법이다.

    초췌한 얼굴에 걸맞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스타일의 옷을 골라입긴 했지만 일 할 만한 컨디션은 아니었다. 컨디션이 안좋으면 쉬어야지 괜히 의욕만 앞서서 덤벼들다간 오히려 평판만 깍이기 십상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지만 뭔가 먹지 않으면 길바닥에 자빠져서 다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될 판이었다. 고양이가 길바닥에 떡이 되어 있어도 치우기가 씹스러운데 나처럼 커다란게 길바닥에 발라져 있으면 청소부 아저씨들이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청소부 아저씨들에게 깊은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쓰레기 대신 치우는 셈 치고 내 자존심을 굽히기로 했다.
    5분 전까지만 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존심을 지킬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자존심을 굽히게 되다니. 정말 되는 일 조또 없구나 씨버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일해서 밥먹고 싶은 사람을 구걸해서 먹게 만드냐 이거야 나는. 그게 바로 이 사회가 잘못됐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저까튼 정치가 넘들이 지네들이 일 안해도 밥이 생기니까 남들도 그런 줄 아는 모양이지.
    나는 오늘에야 말로 시민의 정당한 분노를 터트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대학교때 데모 한 번 안하고 나이 먹은 어느 386은 연대 개쉐이들이 학교 점령하고 데모 할 때 요새 같이 좋은 세상이 왔는데 무슨 불만들이 있다고 데모질이야? 했다는데 그래, 나 불만 조또 많은 놈이다. 어쩔래? 제3한강교 밑에서 삽 한자루씩 들고 만날까?


    오늘은 꼭 정의의 짱돌을 던져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코리아나 호텔을 지나고 있는데 웬 난데없는 데모 떼거리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밥도 아직 안 먹었는데. 정말 여까튼 세상이다. 이럴 때는 눈치도 없이 잘도 생각대로 되는 구나 씨팔. 좀 고상한 양아치이고 싶어서 책도 사보고 한지만 세상이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데 어쩌겠나 결국 입에서 나오는 거라곤 욕밖에 없다. 이 배라머글 씨밸 엿들아 엿먹어라고 했다 나는.

    <- 조또 눈치 없는 대모떼

    그런데 데모데에 얼굴이 낯이 익은 여자가 눈에 띄는 거 아니겠어. 내가 또 아프터 서비스에 충성을 다하는 양아치 아니겠는가. 내 몸이 아무리 피곤하고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아프터 서비스에는 충성을 다해야 하는게 인지상정이지. 그래서 나는 삭신이 녹작뻐근한 와중에도 그녀들과 밥 한 끼 먹어주기로 했다.

    2)
    여자에게 밥 한끼 얻어 먹는 데도 수많은 방법이 있다. 말 안해도 저까튼 세상인거 뻔히 다 아는데 그걸 얼굴에 써붙이고 다니면서 내가 짊어진 저까틈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으면 밥한 끼 사주세요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배고픈 시인이나 라면 불려먹는 고시 수험생의 궁상이 인기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요새는 양아치의 시대다. 어차피 다 아는 인생의 여까틈을 떠들어봐야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 오히려 이편에서 대차게 나가야 하는 법이다.

    요새 여고생 여중생들 얼마나 당찬가. 아저씨 50만원만 내라 하룻밤 놀아줄께. 이 얼마나 재기발랄하며 참신한 생각인가. 썩을 거..

    오늘의 교훈은 그거다! 대차게 나가라!

    나도 대차게 나가서 한마디 했다.
    - 아가씨! 나 알지?

    으헤헤헤 나 알아 몰라?

    그녀는 모르겠다고 했다. 데모하는 와중에 너무 대차게 나가서 아톰보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라는 생각이 번득였다. 이 바닥에서 눈치 재치 센스는 기본 3요소 아닌가. 4요소라고 한다면 말빨이 포함되는 거고. 그래서 나는 좀 더 부드럽게 대했으나 그녀는 성에 차지 않는지 계속 모르겠다고 잡아 떼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얼마나 더 부드럽길 원하는 걸까? 무릎 꿇고 발바닥이라도 핥아 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혹시 요새도 배고픈 시인이나 라면 뿔리는 고시생이 먹혀들어가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려고 하는 데 별안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씨팔 소리가 나오는 거였다. 알지? 난 머리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 이라는 거. 이번에도 머리보다 입이 먼저 자동 반응을 한 것이다.

    그녀는 강수연이었던 것이다.
    오 마이 갓뎀..

    강수연한테 아가씨 나 알지? 라고 했다니.. 두고두고 여자 꼬실 때 써먹을 얘깃거리가 생겼다 제길. 주위의 시선은 졸라 하나도 곱지 않고 좀 예민한 놈이라면 생명의 위기를 느낄만한 그런 순간 인데 참 좋기도 하겠다 씨밸 것.

    일단 눈을 뜨고 보니 강수연 뿐만 아니라 전도연 정선경 등등도 보였다. 문성근 등등의 남자배우도 보였는데 남자배우 같은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어쨋든 그들은 스크린쿼터제 문제로 시위를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나는 당장 먹고 살 게 없어서 정의의 짱돌을 던지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는데 한낫 영어문제로 시위를 하다니. 중학교 때무터 영어는 왜 날 괴롭히는 걸까. 이 민족은 과연 주체성이라는 게 있는 걸까? 라는 말로 이 위기를 모면해 볼까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런 유머러스하지 않은 얘기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얘기하지 않았다.

    어쨌냐 하면 입을 반쯤 벌리고 한동안 멍청하게 서 있다가 조또 얌전한 표정으로

    - 예수 믿어 천당 가세요..
    라고 점잖게 한마디 하고 곱게 물러 나왔다. 하지만 역시 살고 싶으면 혓바닥 밖에 믿을 만한 게 없다. 천당에 가는 것도 좋지만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일단 살고 봐야잖아. 게다가 나는 꽃밭에서 일한단 말이야. 이 얼마나 복된 세상인가! 알렐루야!!

     

     데모도 좋지만 예수믿어 천당 가세요.

     

    3)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자 곧 생각이 달라져서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강수연을 꼬실 수 있었는데 스크린 쿼터제 시위 때문에 강수연을 못꼬셨다고 뻥치고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니 정말로 그랬을 것도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 쓰벌 절라 아깝다 뉘기미. 하필 오늘 같은 날 스크린 쿼턴지 수컹퀴 난봉인지 데모를 해서 모처럼 연예인과 밥 한 끼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냐 이거야.

    하여튼 데모나 하는 쒸불 것들은 김대중 대통령 각하가 정의의 따발총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청와대에 던지려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주먹만한 벽돌 조각은 슬그머니 세종문화회관에 던져버렸다.
    그냥 홧김에 던진건데 어떤 눈치없는 녀석 박터지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빈 속에도 불구하고 한 20여분 달려야만 했다. 절라 분위기 못맞춰주는 넘 때문에 내가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속은 볐지. 골은 띵하지 다리는 후들 거리는데.. 아아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불쌍해 졌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 수록 스크린 놈들이 미워졌다. 씨밸넘들 영화산업 보호해주고 육성해 줄 때 그 돈은 다 어느 구멍으로 들이붓고 세계화 추세에 발맞춰 영화 개방 한다니까 데모를 하냔 말이야.

    계속 지네들끼리 나눠 먹겠다는 수작 아냐 이거. 솔직히 우리나라 영화 이따위 인걸 뭐 국가적 지원이 없었네 기술력이 절라 부족이네 떠들지만 웃기는 소리다. 영화 잘 팔아 먹는 넘들은 이만한 기술력도 없던 시절에 이유없는 반항이라는 걸출한 양아치 영화와 빠리에서 마지막 탱고라는 걸출한 섹스영화를 만들지 않았던가. 이건 순전히 영화판의 큰손들이 지네들끼리 나눠먹기 하고 있다는 얘기다. 5공 6공 시절에 탄압이 심했다는 소리도 그만 좀 해라. 내가 입신의 경지에 오른게 빠구리 말구두 핑계 씹단에 고짐말 씹단 아닌가. 중국에서 터져 나오는 걸작들은 뭐고 인도 걸작들은 뭐란 말인가.

    영화 보고나서 아는 척이나 하는 부류도 졸라 마음에 안든다. 관객 수준에 벌써 문제가 있는 거다. 솔직히 탁 까놓고 얘기해보자. 나도 다른 건 몰라도 영화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다. 정사수표 시리즈와 젖소부인 시리즈를 좍 꿰고 있는 나다.
    몇년 전부터 컬트 영화라는 영화가 절라 인기길래 난 컬트 삼총사 연상 하고 몇번 봤다가 디지버지는 줄 알았다. 그런 것두 영화라구. 하여튼 대학생 놈들이 말썽이다.

    지난 여름 로키호로피쳐쇼? 를 봤다. 내가 극장에 가서 봉변을 당해도 유분수지. 물론 내돈 내고 본 건 아니고 꼬셨던 여자가 원해서 함께 가 주긴 한거지만 아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20년 전 미국 영화를 갖다 보며 소리를 질러대고 춤을 추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컬트는 원래 그런 거라면서?그런게 컬트면 수유리 천지극장에서 쌕쌕이 돌려놓구 딸딸리 치는건 조또 컬트게?
    그런데 왜 정사수표를 무시하냐 이거야. 용가리 만들 돈을 정사수표 팀에게 줬으면 컬트영화 천 편두 더 나왔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다. 해먹을 거 다 해먹은 새끼들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 스크린쿼터제 폐지하라고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우리나라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다.

    말로는 우리 민족이 잘났네 똑똑하네 졸라 뻥만 쳐대지만 그 잘나고 똑똑한 민족을 자근자근 짖밟아 놓은 것들이 소위 윗대가리 새끼들 아닌가. 이제 바야흐로 영화판에 뭐가 좀 되가나 싶더니만 결국은 스크린쿼터제 폐지란다.

    정확한 사정이야 나는 모른다. 나는 그냥 싸우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건 걸리기만 해봐라 박살을 내 줄 테니까.  개방 하자는 쪽이건 결사 반대한다는 쪽이건 혼자 으슥한 골목길을 다닐 때는 뒷통수를 조심해야 할 걸.

    성질을 내면서 달렸더니 배가 더더욱 고팠다. 주머니엔 동전 몇개 딸랑이는데 달리다보니 정독 도서관이 보였다. 도서관 밥 값이 얼마더라 생각하면서 도서관에 들어갔다. 국수 한 대접 말아 먹고 마당 벤치 누워 잠을 청했다.

    날씨가 차가운 만큼 하늘이 파랬다. 절라 즐거운 나날이다 랄랄라~  

by 인디고울프 | 2007/03/15 22:44 | 양아치일기 | 트랙백 | 덧글(0)
2)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를 기다리며..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서러워하거나 노하지 말라

양아치도 울적할 때가 있는 법이니

울음은 안으로 삼키고 밖으로 미래를 보라

인생은 순간일 뿐이니

50년만 참고 견디라.

엿같이 살았어도 죽을 때가 되면

모두 다 그리울 것이니..

 

1.

'버스는 끊겼을 것이다. '

집으로 가는 버스가 끊겼다는 걸 양아치는 안다. X대 앞 정류장은 한가롭다.

아마 5분이나 7분쯤 전에 막차가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양아치는 끈기 있게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다.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가 몇 대 왔지만 양아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밤 풍경이 고요하고 밤바람이 향긋해서 먼 먼 옛날 양아치가

큰 사람 될 거라는 주위의 기대를 받던 어린 시절의 여름밤이

기억나 감상에 빠진 나머지 어슬렁거리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다.

 

2.

오히려 X대 앞 정류장은 추억보다는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폭주족들이 야호~! 씨발 좆같다. 라고 소리 지르며 지나간다.

무단횡단을 단속하는 짭새들은 하찮은 폭주족 따위는 못 본 척 한다.

폭주족들이 지나 간 후엔 청소차 한 대가 정류소 옆 가로수에

모여 있는 쓰레기 봉지들을 치우러 왔다.

주황색 옷을 입은 노인네 3명이 쓰레기 압축 장치가 되어있는 쓰레기차에

부지런히 봉지를 담는다.

쓰레기차는 건더기에만 관심이 있는지 국물은 마구 흘린다.

청소부들은 구청 쓰레기 봉투만 잽싸게 싣고는 나머지는 헤집어 놓는다.

일반 비닐 봉지에 담겨있는 쓰레기들은 길가에 버려진다.

 

3.

허! 참으로 씨발놈 들이로군.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잠시 후에 쓰레기 리어카를 앞세운

다른 3명의 청소부가 와서 길가에 흩어진 쓰레기들을 주워 담는다.

그러나 그들 역시 대강 몇가지만 담고 나머지는 발로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리어카를 몰고 지나가 버린다.

리어카 앞에는 정가영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법한 간나 둘이

사담을 나누느라 정신 없다.

"가자~! 가아자~!'

소리를 뭉뚱그려 토해내는 건 배추 리어카건, 연탄 리어카건,

건어물 리어카건 같은 모양이다. 쓰레기 리어카 드라이버도 같

은 톤으로 소리 지른다. 간나 둘이 천천히 뒤로 빠진다.

"씨발이건 개건, 애건, 기집애건, 또 뭐냐, 거시기건 걸리적 거리면 다 밀어버려.."

운전수 옆에 있는 청소부가 커다란 소리로 말한다.

 

4.

아직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양아치는 버스가 이미 끊겼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 버스를 독하게 기다린다.

주위엔 아직 대여섯 명의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건너편엔 두세 명 정도 있다.

노선이 긴 버스는 아직 끊기지 않고 간간이 온다.

양아치는 혹시 버스가 끊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5.

몇분 동안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던 몇 명은 택시를 탔고 몇몇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양아치도 담배를 꺼내 물고 정류장 앞 까페 계단에 걸터앉는다.

다행히 담배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4시간 가량은 문제 없다.

양아치는 수처과 연필을 꺼내 뭔가 끄적이기 시작한다.

 

6.

좌석버스도 이젠 지나가지 않는다.

몇분동안 택시만 지나간다.

정확히는 택시 몇대와 119구급차 한 대, 병원 엠뷸란스 한 대, 순찰차 한 대다.

이미 많이 늦었다.

 

7.

"버스 기다리세요?"

누군가 말을 건다.

고개를 들어보니 똥싼 바지에 배꼽 티를 입고 머리는 변방의

무사처럼 정수리 조금 못 미쳐 잡아 맨 아녀자가 서 있다.

콧구멍이 커다란 게 미스코리아 서정민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그 미스코리아 이름이 서정민이 아니라 서정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

라고 대답하지만 양아치는 버스가 이미 끊겼다는 걸 안다.

"몇 번 버스 기다리세요?"

"X번이요."

라고 대답하면서 여자가 같은 버스를 기다리면 낭패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에.. 전 x번 기다려요."

그녀가 말한다. 다른 버스다.

"어이구 장하십니다."라구 말하려다가 양아치는 그저 "예에" 하고 만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다.

이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양아치를 포함해서 셋 밖에 없다.

건너 편엔 하나도 없다.

양아치는 수첩에 뭔가 계속 끄적이고

그녀는 주위를 어슬렁 거리며 쓰레기를 발끝으로 톡톡 찬다.

 

8.

"집이 어디세요?"

그녀가 또 말을 건다. 오호라 이제 알겠다. 수작을 걸려는 속셈이군.

양아치는 이제야 짱구가 돌아간다.

"XX동이요."라고 대답하면서 아마 초보인가 보다,

그녀가 돈을 낸다면 멋진 남자 후리는 법을 가르쳐 줄 용의가 있

는데 라고 생각한다.

"저어.. 혹시 우리 학교 다니세요?"

여자가 또 묻는다.

"아니요, 우리 학교 다니는 데요."

양아치의 대답에 그녀는 웃는다.

"어느 학교 다니는 데요?"

"X학교요."

양아치가 솔직히 대답한다.

오늘은 별로 거짓말 할 기분이 아니다.

거짓말할 기분이었으면 택시를 타고 집에 갔을 것이다.

여자는 약간 실망한 눈치를 보이면서도 집요하게 수작을 걸어온다.

"전 이 학교 다녀요. x과 x학번이요."

가만 놔두면 호출번호 전화 번호까지 줄줄 나올 판이다.

양아치는 씨팔이건, 개건, 애건 기집애건 거시기건 다 밀어 버린다는

쓰레기 리어카가 다시 와서 이 기집애를 밀어 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양아치를 쓸어 버리겠다는 소리는 안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거시기' 라는 단어가 께름칙하다.

"군대 갔다 오셨어요?"

"예."

"그럼 몇 살 이예요?'

하며 그녀가 반색을 했다.

"X살이요."

하고 양아치는 솔직히 얘기 한다. 오늘은 별로 거짓말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여자 친구 있으세요?"

하고 갑자기 대차게 나온다. 근지러운 구멍이 있는 모양이다.

"여자 친구는 몇 명 있어요."

라고 양아치가 대답한다.

오늘은 웬지 거짓말도 안하고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도 잘 한다.

"여자 친구는 있는데 애인이 없으세요?"

"애인은 한 명 있어요."

그녀는 잠시 아가리를 닥친다.

그리고 가만히 이 사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존심이 조금 상한 듯 하다고 그녀는 술취에 와중에도 똥내 나는 짱구를 굴려본다.

"전 친구들 하고 술먹고 집에 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술집에서 어떤 애들이

자꾸 치근덕 거리길래 불쌍해서 같이 놀다가 늦어 버렸어요.

다른 애들은 다 가고... 뭐 그러다가 늦어 버렸네.. 엄마한테 혼나는데.."

그녀는 자기도 마음만 먹으면 수백명의 남자친구와 수십명의

애인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양아치의 날카로운 눈으로 보기엔

치근덕 거리던 녀석들이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하나씩 꿰차고

그녀만 혼자 버려 둔 채 슬그머니 도망친 것 같다.

양아치의 날카로운 눈을 속이지는 못한다.

"전 애인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양아치는 문득 그녀가 가련스레 여겨져서

수첩을 덮으며 처음으로 대화를 받아주며 수첩을 덮는다.

그러자 대뜸 그녀는 버릇이 나빠진다.

"아~! 다리 아프다... (잠 시 뜸을 들인 후에..) 옆에 좀 앉아도 돼요?"

하고 묻는다.

양아치는 기꺼이 자리를 양보한다. 그녀가 양아치 옆에 다소곳이 앉는다.

양아치가 벌떡 일어서서 가래침을 뱉는다.

그녀는 "에이~! 안 앉을래.."하며 일어선다.

양아치가 다시 않아서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다.

 

9.

"차비 없으세요? 애인이 택시비 안 빌려줘요?"

그녀가 종내는 양아치를 찌르고 만다.

그는 조금 전 찻집에서 애인을 만났을 때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 이천원 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던걸 기억한다.

처음에 그녀는 차를 안 마시려고 했다.

양아치는 자기가 돈 못버는 양아치인게 원망스럽다.

어째서 판사나 검사나 의사가 못되고 양아치가 됐을까..?

"차비는 있는데요. 아엠에푸잖아요. 아껴써야지요. 좀 더 기다리다가 택시 탈거예요."

쪽이 팔리자 말이 많아진다. 아엠에푸가 고마울 때도 다 있다고 양아치는 생각한다.

 

10.

벌써 1시가 넘어가고 있다. 차가 올 리가 없다.

그런데도 양아치는 좀 더 기다려 보다가 택시 탈 거라고 한다.

그녀는 가능성을 본 것 같다.

"애인이랑 만난지 오래 되셨어요?"

"오늘이 딱 3개월째 되는 날이예요."

"어머! 애인한테 좋은 선물 하셨어요?"

그녀가 재차 찌른다. 아주 골로 보낼 모양이다.

 

11.

원래 양아치는 도서관에서 최신 여자 꼬시는 법을 연구중이었다.

우이동 로터리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여자의 뒤통수를 수박으로 가격하여

기절하면 로즈가든으로 끌고가고 안 기절하면 도망간다는

수박족 이론은 이제 한물 간 감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이 딱 3개월 째 되는 날이라는 걸 깨달아

부랴부랴 달려 왔던 것이다. 뭔가 선물을 사야 한다는 건 알았

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고 그녀를 당장 못 보면 눈이 뒤집어 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녀를 잠시 만나보고 다시 도서관으로 뛰어

가 새로운 이론을 연구 해 볼 생각이었다.

 

12.

그런데 그는 애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녹차를 한 잔 시키면서

불안스레 차 값이 되는지를 물어왔던 것이다.

 

13.

3개월 전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 그녀는 양아치에게 책을 한다발 선물했다.

-평양 여자 꼬시는 법

-중국 공산당의 여자 후리기론

-세계의 대학생 헌팅백과

등등의 주옥같은 명저였다.

양아치는 보답으로 술을 사려고 했으나 2만원 어치 사고 3만원

어치 얻어먹은 후에 택시비 까지 빌렸다. 그 뒤로 아주 심심찮게 택시비를 빌렸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에도 선물을 커녕 차 한잔도 변변히 사지 못했던 것이다.

양아치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사냥감이 아닌 친구에게는 구차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 고 양아치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보일 만큼

다 보여서 바닥에 구멍이 날 지경이라고 양아치는 생각했다.

 

14.

"아무것도 못했어요."

양아치는 씁스레 웃는다.

자신이 양아치인게 다시 한번 싫다.

안구 건조증이 아니었다면 눈물이 흘렀을 거라고 양아치는 생각한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라고 씨부려대는 이유를 깨달았다고 양아치는 생각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변변히 선물하나 못하고...

양아치는 확 죽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가 죽기는 싫고 어디 만만한 자식 아무나 하나 잡아서

대신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양아치는 자기가 양아치인 게 못견디도록 싫다.

그래서 오지도 않는 버스를 고집스럽게 기다리고 있다.

버스는 5분이나 7분쯤 전에 이미 떠나 버렸다.

그러나 양아치는 더욱 열심히, 더욱 고집스럽게 버스를 기다려 본다.

 

15.

"그래두 뭐 100일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때 선물하면 되죠 뭐."

그녀는 세 번째로 찌른다.

100일째 되는 날에도 선물 같은 거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술 취한 놈 뒤통수를 후려치거나 택시를 타고 북한산 자락으로 가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다.

"그만해 씨팔년아!"

라고 버럭 소리 지르고 싶지만 양아치는 씁스레 웃고 만다.

그냥 누군가에게 좀 얻어맞고 싶은 심정이다.

그이 머릿속에는 선물하고 싶은 목록이 스쳐 지난간다.

팻 맨시니의 시디, 팬티엄 투 컴퓨터, 금반지, 테겐호이어 시계,

런닝머신, 루어 낚싯대, 뭐 한 두 개가 아니다.

 

16.

"그런데요, 만약 저라면요 아무 선물 안받아도 함께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마음이 중요하지 사람이 중요한가요.."

양아치가 그녀를 자세히 바라본다. 진한 화장으로 가렸지만 수

두 자국이 있고 왼쪽 콧구멍에 언청이 흔적이 있다. 콧구멍이

커 보이는건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콧구멍이 짝째기다.

"그래.. 너 같은 년은 백일 날 백만원을 누가 준다고 해도 하루

를 못데리고 다니겠다."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양아치는 지금 자신이 양아치라는 게

싫고 좀 얻어맞고 싶은 심정이었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17.

사실 양아치의 애인도 선물 같은건 필요 없고 같이만 있는 것

도 좋다고 말 할 지 모른다. 그녀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녀 생각이고 양아치의 생각은 다르다.

뭔가 해주고 싶다. 하다못해 벌거벗고 춤이라도 춰주고 싶다.

"제길.. 춤이라도 배워둘 걸.."

똥싼 바지가 무슨 소리냐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18.

"나에겐 돈이 필요해! 우워~!"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양아치가 갑자기 180도로 사람이

달라져 노가다, 뚜룩치기, 살인청부, 주식투자등으로 10년 후

엄청난 부자가 된다면 뭐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양아치는

자신이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가장 나쁜건 이렇게 양아치로 늙어 갈지도 모른다는 거다.

더 나쁜건 그녀마저 떠날 지 모른다는 거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양아치는 여자 강사에게 씨팔년 이라고

욕한 게 후회됐고, 남자 교수에게 개새끼라고 욕한 게 후회스러웠다.

학교를 졸업이라도 했어야 하는건데....

술도 안먹었는데 학교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파오며 계산이 잘 안 된다.

하지만 먼저 반말 찍찍 해댄 건 그녀석 들이다. 라고 양아치는

스스로를 정당화 시켰다. 양아치는 원래 반말을 들으면 개양아치로 변하는

개물 양아치였던 것이다.

 

양아치는 얼마 전 여자친구의 부탁으로 존나일보사에 갔던 걸 회상한다.

존나일보는 제목부터 존나 씹스러운 신문산데

안에 들어가기는 안기부 들어가기보다 힘들었다.

존나 힘들었던 것이다.

거기서 편집부 황부장인가 하는 사람을 만나 서류를 하나 전해주고

영수증을 두 개 받아오는 일이었는데. 존나일보의 황부장이

양아치를 물로 보았는지 '너'라는 반말을 찍찍 해댄 것이다.

 

사람 좋은 양아치는 같이 친구하자고 그러는 줄 알았지 자기를 깔보아서 반말을 한다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친하게 지내자는 뜻에서 같이 반말을 주고 받았다.

그랬더니 존나일보 황부장이 별안간 영문도 모르게 발끈하는 것이었다.

"내가 내일 모레면 50이다"

존나일보 편집부의 황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지랄한다 씨발 것! 나두 내일 모래면 태권도가 3단이야!"

양아치도지지 않고 소리쳤다.

"뭐야! 이놈아! 내가 집에 가면 너 같은 아들이 있어 이놈아!"

"쉐끼가 간대로 호놈이냐? 나두 집에 가면 너같은 머슴이 수두룩하다 이놈아!"

"아이고, 세상 말세다 말세.."

"아참.. 세상 참 좋아졌다.. 자유당때만 해도 너같은 놈은 멍석말이였어 멍석말이.."

라고 외치며 양아치는 존나일보사를 빠져나왔다.

때문에 양아치의 여자친구가 곤란을 겪은 모양이었다.

양아치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이 자꾸 생겨 미칠 것만 같다.

이 사회는 유머감각이 너무 없다. 양아치는 그저 농담으로 그랬던 건데

그 년 놈들은 도대체가 이해를 못했다. 양아치는 이런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나라를 이따위로 만들어 놓은 대통령에게 엿같은 씨발였아 엿먹어라고 욕을 했다.

그리고 어쩐지 인생이 꼬여만 간다는 생각을 했다.

 

19.

"아, 참~ 버스 되게 안오네.."

똥싼 바지가 투덜거린다. 그년도 미친 년이다. 시간이 벌써 한시 반을 훨씬 넘었다.

그러고 보니 양아치가 그녀를 만난지 3달 하고 하루째다.

 

"술 좋아하세요?"

그녀가 막판 스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년아? 그냥 섹스 좋아하냐고 물어봐라.."

하려다가 양아치는 그냥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저기요.. 그럼 우리 어디 가서 버스 올 때까지 맥주나 한잔 안 하실래요?"

이년도 상당한 년이군. 하고 양아치는 생각한다.

"술은 싫고 버스 올 때까지 어디가서 잠이나 같이 자는 게 어때?"

라고 말하려 했으나 양아치는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다.

이미 떠나 버린 막차를 되돌려 탈 수는 없겠지만

그는 안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싶은 기분인 것이다.

"아니요, 싫은데요."

라고 양아치는 점잖게 거절한다.

"왜요? 집에 일찍 들어가셔야 돼요?"

"아니요, 집엔 안 들어가도 되는데 못생긴 여자랑 술 먹기

싫어서요. 특히 콧구멍 짝재기인 여자하고.."

그녀는 자기가 제대로 들은 건가 의심하는 눈치더니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20.

드디어 X대 앞 버스 정류장엔 평화가 깃들었다.

양아치는 다시 수첩을 꺼내 뭔가 끄적이다가 3시가 가까워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우이동의 산 속에서 택시 운전수의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우워~! 강도야!!"

 

 

by 인디고울프 | 2007/03/15 22:39 | 양아치일기 | 트랙백 | 덧글(0)
가을 어느 날

 가을 어느 날.. 

 1. 오늘도 여자를 꼬셨다.  

  나는 여자를 꼬셔야만 밥을 먹고 제대로 잠을 잘 수 있는 아주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상황은 아무한테나

벌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내 딴엔 난 쿨이다..

미국에선 오랜지 족을

쿨이라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쥐이~

 

다행인 것은 내가 내츄랄 본 양아치라는 것이다. 남들은 쪽팔려서

절대로 못할 만한 짓들을 서슴없이 할만한 두꺼운 낮 가죽을 가졌으

며 웬만한 동네 건달 한둘쯤은 한방에 보낼 만한 박치기 실력을 보

유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할 때 살살 잘 돌아가는 매끄러운 혓

바닥은 뜻도 잘 모르는 단어를 제 멋대로 심심찮게 내뱉는 야부리

독립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마징가 제트로 치자면 무쇠팔 무

쇠다리 로케트 주먹에 비견할만한 양아치의 3박자라고 자부한다. 나

는 최강의 양아치인 것이다.

  

 

최강의 양아치라고

자부 한다  나는..

 

힘이 막 솟아.. 우워~

 

  그러나 내게도 약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뒷머리가 까졌다는 것

이고 (이는 앞머리를 뒤로 넘겨 묶어서 아주 멋지게 카바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공부 잘 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아치 세계에선 나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때때로 내 얼굴이 쪽 팔리곤 한다.

 

  그러나 이 공부 잘하게 생긴 얼굴 때문에 여자를 꼬시는 게 수월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이거야말로 약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자를 꼬실 때 내가 웃는 얼굴로 나 양아치야.. 라고 소개하면 절

대로 믿지 않는다. 그건 대단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나 양아치 맞아.. 정말이라니깐..

 

  어제는 여자를 못 꼬신 관계로 을지로입구 역에서 자야만 했다.

이런 제길.. 아침에 어찌나 몸이 욱신거리고 쑤시던지.. 게다가 역

무원 씹새끼들은 왜 꼭두새벽부터 사람을 깨우고 지랄을 치는지.. 국

민의 세금을 갈취해서 하는 짓이라곤 잠도 못 자게 하는 것밖에 없

으면서 임금협상이니 노동자투쟁이니 하는 벽보를 붙이는 건 참 가

당찮은 가소롭기 짝이 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데모하는 지하철 노동자들을 처단했으면 하고 생

각하면서 나는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물이 꽤 차가웠지

만 여자들은 원래 깔끔한 남자를 좋아하는 법이니 어쩔 수 없다.

가끔 변태 같은 년들은 때딱지 앉은 놈들을 터프 하다고 따라다니

는데 그런 건 세기말적 현상으로 생각한다 나는.

 

  잠도 한데서 잔데다 물까지 차가워서 골치도 아프고 감기가 오는

것 같았다. 제기랄.. 이것도 쉬운 게 아니란 말이야. 란 뜻으로.. 어

씨벌 조깠네.. 라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자던 거지 한 명이 화

장실에 들어서며 나를 보더니.

"어 씨벌눔 별 지랄 옘벵을 떠는 구만.."

이라고 하길래 번개 같이 콧잔등에 박치기 한 판 해줬다.

장난으로 그런 건데 그 자식 정말로 코뼈가 주저 앉아 버리다니..

녀석도 되게 유머 감각 없는 자식이로군. 하며 나는 샤워를 마쳤다.

 

  어제 잠깐 얘기 한 바로 그 친구는 서울에서 대학까지 잘 나오고

직장 생활 하다가 몇 달 전에 직장 짤리고 벌어 놓은 돈 다 떨어지

자 비렁뱅이가 된 친군데 사회에 대한 원망이 대단했다.

등신 같은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녀석은 학교 다닐 때 가르쳐주는 공부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누가 공부 열심히 하랬나.. 괜히 지가 선생한테 알랑방귀

뀌고 싶으니까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간 거 면서.. 비렁뱅이 하기 싫으

면 지두 나처럼 선생한테 줘 터져가며 여자 꼬시러 다녔으라지.. 양

아치는 최소한 거지는 아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는데 거렁뱅이 옆에서 하룻밤을 잔 관계로

옷에선 냄새가 났다. 그런 상태론 도저히 여자를 꼬시긴 커녕 말도

꺼낼 엄두가 안난다. 뭐 엄두야 나겠지만 그런다고 넘어올 여자는 내

취향이 아닐 것이 분명하니까...

 

2.

  배에서 꼬륵 소리가 났다.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어서 참아야

했다. 배고플 때는 그저 자는 게 최곤데.. 잠깨서 밥을 못 먹는 건

거의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난 새삼스럽게 지하철 그 녀석이 저주스

러워져서 불을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새벽 5시에 날 깨우면 도대체 어쩌잔 얘긴가.. 그 자식도 참 대책

없는 자식이다. 할 일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왜 깨운거야 대체..

옷가게도 10시는 돼야 문을 열기 때문에

난 그때까지 잠이나 더 자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2호선이 순환선이 아닌 건 정말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 씨팔 정말 젖같은 인생 살이군 젖같은 씨발

엿아 엿먹어라 고 욕을 하며 잠을 청했다.

 

  눈을 뜨니 육삼빌딩 너머로 해가 지는 게 보였는데 그간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여튼 난 부랴부랴 명동의류에서 옷을 갈

아입고 신촌 락카페로 향했다.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들어

서자마자 적당한 여자를 찾아내 합석을 해야만 했다. 적당한 여자가

보이지 않으면 다른 락카페를 찾아가서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보일 때까지..찾을 때까지 하는거다..    맨발의 청춘이지 제길...

 

  오늘은 5번째 락카페에서 적당한 여자를 찾아냈다.

그녀는 하얀 투 피스를 입고 멍청한 시선으로 술병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난 순간 필이 딱 왔다.            왈왈왈 침질질~

나 정도 경지에 이르면 꼬셔질만한 여잔지

아닌지는 벌서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여자를 꼬시는 게 실

력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꼬셔질만한 여자를 알아보는

것이다. 세상없어도 안 넘어 오는 여자는 누구도 꼬실 수 없기 마련

이다. 초보자들은 대부분 안넘어오는 여자를 잡고 힘을 쓰기 때문에

꼬시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의 교훈은 넘어올 만한 여자를 꼬시라는

거다.

 

3.

  나는 그녀에게 똑바로 걸어가 맞은 편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나

를 놀란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 봤다.

   뭘 꼬나보냐 눈알을 후벼주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따

위 말을 하면 안된다.

  "뭐든지 항상 되풀이되는 것 같지 않아요?"

  라고 나는 물어보았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은 듯 했다. 뭐 아무 뜻 없는 말이니

까 어쨌거나 상관은 없다. 아무렇게나 말만 붙이면 그만이다. 그렇게

말을 일단 붙여만 높으면 10분 뒤엔 가장 낮은 수준으로 대화를 이

끌 자신이 있었다 나는.

 

4.

  10분 뒤에 그녀는 내게 여자가 없을 땐 마스터베이션을 하냐고

물어보았다.

  난 안 한다고 했다. 그게 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메탈리카의 마

스터 오브 퍼펫츠는 알고 있었지만 베이션은 뭔지 확실하지가 않았

다. 난 뭔가 베이비와 관계된 게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미쳔냐? 내가 그땅거 하게"

  라고 말했다.

  그녀는 픽 웃으며 대견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때문에

나는 약간 우쭐한 기분이 들면서 잘못 대답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못난 놈들이야 여자랑 한번 자보는 게 소원인 녀석도 많고, 피 같

은 돈을 들여 사창가를 헤매는 녀석도 있지만 나 같은 프로는 여자

랑 같이 자는 게 그리 즐겁지 않을뿐더러 약간 피곤한 날은 지겹기

까지 하다. 뭐든지 직업이 되면 재미가 없어지는 법이다.

그녀에게 술을 먹이면서 에프엠대로 내게 넘어오는 그녀를 보자

나는 한숨이 나왔다. 사실 좀 지겨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내 직분

에 충실하기 위해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인간이란 동물이 느끼는 외

로움에 대해 잠시 얘기하다가 서로 꼭 끌어안고 자면 좋지 않겠냐고

얘기했다.

 

  "모래알처럼 의미 없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사막에서 친구를 만나

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기뻐하며 모닥불을 피우고 천막을 친 후

밤이 이슥하도록 술을 마시다가 흡족한 마음에 서로를 포옹하지 않겠느냐고..

그것이 바로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라며 혓바닥이 기차게 돌아갔다. 외로움이니 뭐 어쩌니 하면서...

무슨 얘기했는지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내 혀는 내 머리보다 똑똑한

모양이다. 내 입이 쉴새 없이 재잘거리는 가운데 내가 알아들은 말은

반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런데 혓바닥이 좀 오버한 모양인지 그녀는 접수를 잘 못했다. 하

긴.. 이미 마음을 열어뒀는데 이런 대가리 쮜나는 소리하는 건 숙녀

에게 예의가 아니다.

  난 "여관에 가서 레스링 가르쳐 줄까..?"하고 다시 말했다.

그녀는 까르르 웃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접수가 된 모양이다. 만약

이번에도 접수가 안됐다면.. 이봐 공주님. 빠구리 한판 어때? 엉덩이

에 바추카포를 꼬자 줄께.. 라고 말할 뻔했다. 난 숙녀한테 그런 말

쓰는 거 좋아하는 놈이 아닌데 접수가 빨리 돼서 다행이다.

하여튼 우리는 먹고 마시고 한 뒤에 밤 12시쯤 되자 근처 여관으

로 갔다.

 

5.

  여관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는 숨가쁜 키스를 해대기 시작했

다. 이 때에도 혀는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내 혀는 말뿐인 놈

이 아닌 것이다. 그 행동 또한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녀는

단박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생략... 생략...(자진 검열에 의함)

막 역사가 이루어질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녀는 ing중이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 우워~

 

 

  그녀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냥 끌어안고 자고 싶다고 했

다. 난 화가 치밀었다.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거절당하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지 깨달았다. '내일이나 언제나 시간 있으면 해고노동

자 돌떤지는 거나 응원하러 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

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난 항상 주댕이가 말썽이야 라고 생각

할 밖에.. 그리고 밖으로 나가 다른 여자를 꼬실 기력도 없었다. 하지

만 유감의 뜻을 조금 표시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

었으며 또 원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조또 내팔자.. 맨날 딸딸이만 쳐야돼나.. 하고 생각하면서 "괜찮아.

하지만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하고 말했다.

                          

  지나가던 원숭이가  

  쯧쯔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쪽팔려 디지는줄 알았다.

 

 

말하는 도중에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난 그런 점잖은 말을 써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경우엔 보통 평범

한 말로 - 아 씨팔 조까치 됐네. 하거나 그냥 - 닝기미. 하거나 했

다. 내 입에서 그런 점잖은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너무 만족스러워

서 한번 더 하기로 했다.

".... 정말 유감이야."

내가 씹스러운 표정으로 진지하게 얘기하자

  "내가 마스터베이션 해줄까?"라고 그녀가 말했다.

  "괜찮아. 난 뭐 딸딸이 치면 되."라고 대답하고 화장실로 갔다. 아

무리 내가 양아치라도 처음 보는 그녀 앞에서 그 짓을 하기는 쑥스

러웠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국민체조를 한판 끝내고 머리가 맑아지자 앞뒤

의 정황으로 보아 마스터베이션이 어떤 건지 그제서야 대강 짱구가

돌아갔다.   이런 제길.. 난 짱구는 좋은데 너무 늦게

돌아간단 말이야. 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손에 묻은 걸 털어 버리며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얼마나 세게 털었는지 알아?

 

6.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회사에 가야한다며 부산을 떨었다. 실속도

없이 피곤했던 터라 난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난 여자에게 짜증을 내

는 그런 몰상식한 놈은 아니다. 오히려 난 그런 놈을 아주 경멸한다.

특히 여자를 때리는 놈들은 죽이고 싶을 정도다.

그녀는 나에게 더 자다가 나오라고 했지만 그녀를 그렇게 보내 버

리면 아침을 못 먹을 것 같아서 회사까지 바래다주겠다며 따라 나섰

다.

  그녀의 회사는 현대 빌딩이었다. 그 안에서 몸을 파는지 술을 파는

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현대빌딩 안에서 근무하는 것은 확실했다.

택시가 회사에 다다르자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회사 안으로 종종

걸음 쳤다. 내가 아침을 안 먹은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제길.. 오늘도 아침은 거르는 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비원 앞 공원 벤치에 누웠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반짝거리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눈이 따끔거리며 목구멍이 커해졌다.

재채기가 나오려고 하길래 오른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양아치는 즐겁다.. 랄라라~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by 인디고울프 | 2007/03/15 22:33 | 양아치일기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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